눈부신 궤적을 그리다 유도무기 기체구조 연구원 이연관 박사
글. 편집실 사진. 박기현 일러스트. 챗GPT
글. 편집실 사진. 박기현 일러스트. 챗GPT
‘K-방산’이 세계 무대에서 위용을 떨치는 오늘,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엔 연구라는 구도의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연관 박사는 유도무기 기체구조 분야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그려온 독창적 연구자로, KAIST 조정훈 학술상과 국방과학연구소 제10회 의범학술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그간의 학술적 성취를 공인받았습니다. 그에게 상은 과학적 진리를 탐구한 인고의 시간에 대한 보답이자 이정표이지요. 그가 열어젖힌 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유도로켓 기술이 다다른 광대한 영토를 맞닥뜨립니다.
이연관 박사가 걸어온 길
·비닉/전략 유도무기 내열구조 설계기술 연구
·초경량 anisogrid 복합재 기술 개발
·차세대 요격무기 천궁III 선행 핵심 목표 달성
·제21회 KAIST 조정훈 학술상 수상
·2025년 제10회 의범학술상 수상
·그 외 국방과학상, 방위사업청 표창, 특허청장상 등 수상
1 연구의 시작
이연관 박사에게는 목마름이 있었다. 석사과정에서 광섬유를 이용한 가속도 센서 개발을, 박사과정 중 구조 건전성 모니터링 연구를 수행하며 흥미를 느꼈지만 기술성숙도(TRL) 면에선 실험실을 넘어서기 어려운 기초·응용 단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2013년 국방과학연구소 입소는 그에게 신선한 자극제로 작용했다. 학문적 개념과 이상을 가시적 성과로 도출해 내는 일이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학교생활이 이론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연구소에서 맡은 업무는 근본적으로 달랐어요. 실제 무기 체계에 반영해 군 적합 판정을 받아야 하고, 비행 시험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죠.”
대학원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은 연구소의 엄정한 절차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고 깨지며 갱신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박사는 어떤 문제든 깊이 파고들어야 즐거움이 샘솟는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과학자였다. 문제에 직면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 그에게는 곧 쾌감이었다.
2 탐색과 도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그가 도전한 첫 번째 연구 영역은 초경량 복합재 구조 기술이다. 극한의 강도와 획기적 경량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이 기술은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이자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소수의 우주 강국이 보유해 기술 교류를 엄격히 제한하던 전략 자산이었다. 외부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 박사는 독자적 설계 기법과 제작 공법 개발에 매달렸고,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지도를 그리느라 분주했다. “연구 윤곽을 잡고 전체 그림을 먼저 그려놓으면 비교적 적은 시간을 투입해 최선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박사 2년 차부터 김천곤 교수님께 배운 습관인데, 견실한 연구자로 거듭나기 위한 훈련이었죠.”
끈질긴 탐색 끝에 그는 2022년 3월 국내 최초로 초경량 복합재 구조 기술을 적용한 비행 검증을 완수했다. 국내 특허 2건, 세계 상위 10% SCI 학술지 2편 등재를 통해 기술의 학문적 가치도 입증한 성취였다. 오늘날 이 박사를 만든 연구 루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짬이 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수집해 메모를 정리하고 목표를 촘촘히 세운다. 두 번째, 최소한의 시편으로 아이디어를 확인한 뒤 시험과 검증을 거듭한다. 흐름을 놓치지 않고 연구 성과를 축적하는 방식은 이 박사에게 효율성과 독창성을 안겨 주었다. 특허를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검증과 논문으로 결과를 내는 것 또한 26건의 특허를 확보한 비결이다.
3 한계의 돌파
이 박사 연구의 핵심 주제는 초고온 내열 설계다. 구조물이 고온 환경에서도 기계적·기능적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각종 미사일을 탐구할 때에도 발사 순간부터 비행 종말 단계까지 극한 조건을 견디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의 집요한 고찰과 문제의식은 국방과학연구소가 내열 설계 분야 특허를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기술이 자주국방의 버팀목이자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국가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겨서는 안 되잖아요. 모든 층위의 방어 능력을 우리 기술로 갖춰야 온전한 자주국방이지요.” 이것이 방산기술 보유국의 원동력이다.
4 경계의 확장
내열 설계 연구는 차세대 천궁 III 요격 기술의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초고온 추진 가스와 극한의 고압이 동시에 작용하는 종말유도 환경에서 단 한 번의 오작동 없이 성능을 유지하는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 조건이라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장고 끝에 이 박사가 발견한 답은 3D 프린팅 기술이다. 기계 가공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초고온 세라믹 코팅과 열변형 흡수 구조를 결합하는 것. “모든 소재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결국 그 한계를 넘는 건 설계와 제작의 창의적 아이디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연구였지만 결실은 달콤했다. 연구는 국내 특허 7건, 미국 특허 2건, SCI 논문 5편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연구는 끝났지만 제게 남은 것은 여전히 많더라고요. 어려운 문제를 파고들수록 높은 수준의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른 일도 그중 하나예요. 모든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5 길을 남기다
경량 구조 기술과 극한 내열 설계 연구는 이제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크고 작은 문답의 씨앗은 어느덧 대한민국 3축 체계(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를 지탱하는 뿌리로 뻗어나갔다. 그리하여 2025년, 이 박사는 KAIST 조정훈 학술상과 국방과학연구소 의범학술상을 손에 쥐며 2관왕을 차지한다. 기초과학이나 산학연 협력이 활발한 조직이 아닌, 보안이 엄격한 환경에서 학술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 사건이다.
이 박사는 수상의 영예를 ‘K-방산’의 높은 위상과 이를 위해 노력해 온 국방과학연구소 구성원에게 돌렸다. “맛집을 고를 때 후기와 평점으로 내력을 가늠하듯, K-방산에 쏠리는 세계적 관심은 선배와 동료 연구자들이 쌓아온 성과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제가 수상할 수 있었죠.” 그는 수상으로 받은 상금마저 모교에 기부했다. 자신의 성과가 다음 세대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박사의 연구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그는 얼마간 생각한 뒤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신의 연구가 ‘꽃봉오리’이기를 바란다고.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기술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고도화된 기술일수록 더 넓게 뻗어나갑니다. 언젠가 만개할 꽃봉오리 같은 연구를 하고 싶어요.”
자주국방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 의범학술상
국방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45세 이하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2010년 국가 안보를 위해 전 재산 100억여 원을 기부한 의범 김용철 선생을 기리고자 제정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무한하다”라는 말을 남긴 의범 선생의 뜻을 되새기며
우수한 연구 업적과 창의성을 독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