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행성에서 보낸
첫 번째 편지
글. 편집실 사진. shutterstock
출처. 한국과학창의재단, 조선일보, 중앙일보, 뉴욕타임스
글. 편집실 사진. shutterstock
출처. 한국과학창의재단, 조선일보, 중앙일보, 뉴욕타임스
이 봄, 하늘은 도약과 비상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새싹이 지표면 위로 솟아오르는 계절. 대지를 넘어 저 하늘 끝에 자신을 내던진 유리 가가린과 보스토크 1호를 떠올립니다.
하늘과 우주는 오랜 세월 동안 신화의 영역이었습니다. 태양에 다가간 이카로스의 날개는 녹아내렸고, 비행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허락된 일이었죠. 인류가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지구라는 요람을 벗어나 우주의 품에 안긴 이가 있습니다. 27세의 청년 유리 가가린. 그는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싣고 신화적 금기에 도전했습니다. “포예할리!(가자!)”라는 짧고 강렬한 외침과 함께 중력을 이겨내고 미지의 어둠 속으로 항해를 시작한 겁니다.
고도 301km의 지구궤도를 비행하는 동안 그는 보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 “지구는 푸르다.” 나지막한 가가린의 탄성은 지평선의 서광을 목격한 자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그가 우주에 머문 시간은 단 108분이지만, 이 찰나의 순간은 인류 역사 속 한 페이지로 영원히 기록됩니다. 시속 2만 9,000km로 지구를 돈 가가린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갈등과 혐오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온몸으로 절감했을 겁니다.
우주 비행사의 귀환은 곧 지구인의 환희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수도였던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냉전 장벽 너머 서방 국가조차 그의 성취에 경외감을 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영웅의 삶은 우주 비행만큼이나 짧고도 강렬한 유성 같았습니다. 체제 선전의 도구로 소비되던 그는 다시 우주로 나아가지 못한 채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의문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비행에 성공한 1961년 4월 12일, 유엔은 2011년 총회에서 이날을 ‘국제 인간 우주 비행의 날’로 선포합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신비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고,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불굴의 의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밤하늘 별밭을 바라볼 때, 가가린의 작은 걸음이 저 먼 곳까지 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는 여전히 별을 꿈꾸며, 우주의 생명체임을 자각하는 여정을 지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