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도, 갈증도, 슬픔도 잊게 하는
전장의 맥주
글. 강나은 사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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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과 연기 속에서 숨을 고릅니다. 배고픔과 극심한 갈증마저 잊게 하는 것은 바로 손에 든 맥주 한 잔.
전장의 긴장과 피로를 잠시 내려놓은 병사들은 이제 다시 승리의 집념을 다집니다.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순간부터 맥주는 병사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배고픔을 달래는 비상식량이나 다름없었고, 오염된 물을 대신하는 생존 도구였으며, 공포 속에서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위안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부터 한반도의 설원까지 전쟁사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맥주가 있었다.
맥주가 전쟁사에 등장하는 첫 장면은 기원전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맥주는 병사에게 지급하는 공식 배급 식량이었다. 알코올 도수 2~3%의 걸쭉한 이 음료는 수분과 열량을 공급하는 ‘액체 빵’으로, 오염된 물이 넘치는 야전에서 수인성 질환을 막는 현실적 대안이기도 했다. 중기 청동기 시대 시리아 도시 마리에서 출토된 설형문자 토판에는 군사 동원 시 병사에게 맥주를 나눠 주기 위해 전장에 양조사를 딸려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집트 병사에게는 하루 약 4~6L에 달하는 맥주를 보급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전쟁터에 양조사가 함께 행군했다는 사실은 맥주가 군의 전투력을 유지하는 기반 식량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켈트족 전사들에게는 전투에 앞서 섭취하는 진통제, 혹은 사기 진작을 위한 촉매 역할을 했다. 출전 직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부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렸고, 맹렬한 공격을 퍼붓게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이 즐기는 인디아 페일 에일(IPA)도 전쟁의 산물이다. 1790년경 영국 양조업자 조지 호지슨은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에게 맥주를 보내기 위해 약 1만 9,000km의 항해를 견딜 수 있도록 홉 함량과 도수를 높인 에일을 개발했다. 병사들의 갈증을 채우기 위한 궁리가 하나의 맥주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다.
맥주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략 물자로 편입되었다.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때, 영국과 독일 병사들은 참호 사이로 걸어 나와 맥주와 빵과 담배를 서로 나눴다. 총이 아닌 맥주잔이 잠시나마 적군과 아군의 경계를 허문 사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 해군이 상선을 개조해 태평양 해상에서 직접 맥주를 빚는 ‘떠다니는 양조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이제 한반도로 건너온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공식 배급을 중단하자 논쟁이 일었을 때, 밀워키 지역의 맥주 브랜드 슐리츠(Schlitz)와 블라츠(Blatz)는 각각 60만 병씩, 합계 120만 병의 맥주는 무상 제공했다. 혹한의 산간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맥주 한 병은 전쟁 한복판에서 선물 받은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위로였을 테다.
긴박한 전시 상황에서 맥주는 직접적 무기로 변모하기도 했다. 1951년 영국군 병사 윌리엄 스피크먼은 수류탄이 떨어지자 빈 맥주병을 집어 던지며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후 그는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았고, 훗날 ‘맥주병으로 적을 막아낸 병사’로 기록에 남았다.
맥주가 전쟁사에서 여느 술보다 사랑받은 이유는 분명하다. 야전에서 쉽게 빚을 수 있고, 갈증과 허기를 동시에 채우며, 사기를 끌어올리는 술이라는 것. 그 덕분에 맥주는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도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한, 가장 오래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