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May + June Vol.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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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겹으로
수호한 국경

글. 편집실   사진. shutterstock, tvN
출처. 국방일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열세 겹으로
수호한 국경

대포 소리가 천지를 흔들자 투박한 무명천을 겹쳐 만든 면제배갑을 착용한 병사들이 전장에 뛰어듭니다. 여름의 길목, 잔인한 습도와 고온을 견디며 적군과 맞서 싸웠을 선조들의 애국 정신을 헤아려 봅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한 면제배갑.
강화도 초지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면제배갑을 착용한 병사들이 활약했다.

무명천으로 완성한 조선의 자부심, 면제배갑

서구 열강의 철갑선이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1871년 6월 1일,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통상을 요구하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조선의 문턱을 막 지났습니다. 바로 신미양요(辛未洋擾)입니다. 전운을 감지한 우리 군은 비장의 방호복을 착용하고 결전에 나섭니다. 방호복의 이름은 면제배갑(綿製背甲). 서양의 총칼에 맞서 과학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한 조선이 발견해 낸 해결책이었습니다.
병인양요를 겪으며 서양 소총의 위력을 실감한 흥선대원군은 국방 혁신을 위해 병기 개발을 서둘렀고, 명을 받든 무기 제조자 김기두와 안윤은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12겹의 무명천이 탄환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여기에 한 겹을 더 얹어 총 13겹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방탄복 면제배갑을 완성했지요. 섬유의 질긴 성질을 이용해 탄환을 막아내는 현대 방탄복과 유사한 원리를 적용한 셈입니다. 면제배갑은 장식성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귀한 생명을 지키고 승리를 쟁취하도록 도교와 불교의 주술적 문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모양은 한 벌 한 벌 조금씩 다르지만 만든 이의 절실한 마음만은 하나였습니다.
1871년 6월 1일 손돌목 포격전으로 시작한 신미양요는 6월 11일 광성보에서 치열한 결전으로 이어집니다. 어재연 장군과 조선군은 이 두꺼운 면제배갑을 입고 태양 아래 땀을 흘리며 최후의 순간까지 항전합니다. 면제배갑은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미군의 최신 소총을 완전히 방어하기엔 역부족인데다 대포 파편에 불이 붙는 취약점도 있었으나, 조선군은 포로가 되느니 바다에 몸을 던지는 용맹함을 떨쳤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낡고 빛바랜 면제배갑을 바라봅니다. 과학적 지혜로 외세에 맞서려 했던 조선의 꼿꼿함을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150여 년 전 6월 첫날, 염하를 가로지르던 선조들의 열기를 기억하며 조선의 뛰어난 과학기술이 지켜낸 이 땅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