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May + June Vol. 196
DEFENSE IN NUMBERS

두 번째 이야기 1980년대:
축적의 시간, 기반을 다지다

글. 편집실   일러스트. 챗GPT, shutterstock

두 번째 이야기 1980년대:
축적의 시간, 기반을 다지다

시간은 ‘번개’처럼 흘러 1980년대에 이릅니다. 대전에 터를 잡은 국방과학연구소는 인력 감축의 시련 속에서 자주 국방의 기반을 다집니다. 현무의 비상, K-9의 도약과 함께 K-방산의 시대가 열린 그 시절의 뜨거운 이야기를 지금 만나 봅니다.

국방과학연구소 56년 여정의 좌표를 소설로 읽다

도면도 없이 40일 만에 병기를 복제해 낸 ‘번개사업’의 긴박한 순간부터 한국군 독자 정찰위성 ‘425위성’을 탄생시키기까지, 지난 56년의 눈물겨운 사투를 소설로 만납니다. 국방과학연구소 56주년 연재소설 ‘숫자 너머의 이야기’는 시대를 빠르게 읽어내는 눈으로 누구보다 앞서 자주국방의 길을 개척해 온 선구자들의 숭고한 여정을 기록합니다. 과거의 유산으로 미래의 평화를 일구는 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 무내미의 차가운 새벽, 그리고 낯선 빛

대전 유성구 수남동. 사람들은 이곳을 ‘무내미’라 불렀다. 마을 뒤편에 금병산이 있어 ‘물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곳’이란 뜻을 지닌 이름이다. 무내미는 서울 홍릉의 울창한 숲을 뒤로하고 내려온 국방과학연구소의 새로운 터전이었다. 이전을 마친 연구소의 공기는 홍릉보다 훨씬 차가웠고, 사방은 황량했다.
1983년 1월 마지막 날, 연구원 민준은 실험실의 낡은 계측기 앞에 앉아 있었다. 1970년대 ‘번개사업’의 긴박함과 ‘백곰’의 기적을 일군 그였지만, 마주한 현실은 그때보다 더 혹독했다. 한겨울 칼바람보다도 매서운 비수가 그를 겨누는 듯했다. 1년 전인 1982년, 연구소는 유례없는 아픔을 겪었다. 2,500명을 훌쩍 넘던 인력이 1,800명도 채 안 될 만큼 단숨에 줄어들었다. 무려 786명의 동료가 정든 연구실을 떠나야 했다. 산통에 비견할 만한 아픔이었다. 남은 이들의 어깨 위엔 끝없는 연구, 생존과 투쟁이란 무거운 짐이 남았다.
“선배님, 수치가 잡히지 않습니다. 유도탄 제어 루프에서 계속 오차가 발생해요.”
후배 연구원의 목소리에 민준은 흐려진 정신을 다잡았다. 그를 끈질기게 괴롭힌 계측기의 알 수 없는 빛. 아무래도 예사 노이즈가 아니었다. 떠나간 786명의 공백에서 비롯한 거대한 구멍이며, 우리가 언젠가 채워야 할 결핍을 알리는 경고등이었다.
민준은 주머니 속 낡은 수첩을 재차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떠올렸다. 수류탄의 최적 무게를 찾기 위해 자갈을 던지며 적었던 ‘380g’, ‘사과형’. 그때의 집요함이 지금도 필요했다. 무기를 복제하는 시대를 넘어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체계를 내실화해야 할 시점이었다.

#2 숫자가 증명하는 헌신의 가치

민준의 책상엔 서류 뭉치가 가득 널려 있었다. 인력이 대폭 감축된 상황, 연구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가 수북이 쌓인 채다. 그 속엔 1980년대 들어 부쩍 늘어난 투자 비용, 개별 투자 항목별 수치를 빼곡하게 적어둔 서류도 존재했다. 민준이 갓 입소한 1970년대에 비하면 전체 투자 규모는 약 네 배에 달했다. 연구원들은 서로에게 묻곤 했다. 이 막대한 돈을 들여 우리 손으로 직접 무기를 만드는 것이 정말 경제적인가? 그 질문에 민준은 냉철한 계산으로 답해야 했다.
“이걸 보게. 우리가 지금 개발 중인 ‘5톤 확장식 유개차량’ 말이야.”
민준이 후배에게 내부 검토 자료를 보여 주었다. 총개발비는 약 20억 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국산화함으로써 얻게 될 예산 절감액은 무려 6,175억 원으로 추산 가능했다. 투자 대비 무려 301.9배의 효과였다.
“‘차기 FM 무전기’는 또 어떻고? 13억8,000만 원을 투자해서 2,097억 원을 아낄 수 있어. 151.9배의 효율이지. 우리가 지금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결국 수십 년 뒤 국가의 부로 축적될 거란 말일세.”
민준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착수한 사업 중 전력화 사업이 일으킬 경제적 효과는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기적은 연구원들의 밤샘과 깎여 나간 이들의 고통 위에서 피어난 결과이기도 했다.

#3 멈춰버린 유도탄의 꿈

시련은 숫자 너머에 있었다. 1982년 조직 축소의 여파로 유도탄 연구팀의 핵심 인력이 대거 떠나면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던 미사일 개발 계획은 존폐 위기에 처했다. 백곰의 뒤를 이을 지대지 유도무기 ‘현무’의 꿈이 신기루처럼 멀어져 갔다.
“미국은 기술협력을 꺼리고, 우리는 지금 사람도 예산도 부족해. 민준, 자네가 이 팀의 중심을 잡아 줘야겠어.”
소장의 특명이 떨어졌다. 민준은 다시 한번 시험장으로 향했다. 담뱃갑 은박지로 안테나 전파 간섭을 막았던 임시방편의 시기는 지났다. 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고도의 정밀 기술과 체계적인 데이터 축적이 필요했다.
현무 개발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시험 발사 때마다 미사일은 궤도를 이탈하거나 공중에서 분해되기 일쑤였다. 세간에서는 ‘국산 미사일 무용론’이 터져 나왔다. “그 돈이면 해외에서 완성품을 사 오는 게 싸다”라는 비아냥이 연구소 담벼락을 넘나들었다. 민준은 폭설이 내리는 시험장 해변에서 미사일 동체를 붙잡고 밤을 지샜다. 1982년 연구소를 떠난 동료들의 얼굴이 눈발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4 먹구름을 뚫고 솟구친 희망

1985년 9월 21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현무의 공개 시험 발사.
점화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화염과 함께 육중한 동체가 하늘로 솟구쳤다. 민준의 심장박동이 계측기의 그래프와 동기화되었다. 미사일은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명중입니다!”
관제실에 환호성이 터졌다. 백곰의 좌절을 딛고, 한층 강력해진 현무가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독자적 유도무기체계를 획득했다. K-9 자주포, KT-1 훈련기 등 세계를 놀라게 할 ‘K-방산’ 수출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 장면이었다.
민준은 가쁜 호흡을 고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과거의 고통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쁨은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 조금 더 힘내 보자고.

#5 미래를 위한 약속, 그리고 새로운 그림자

1989년 가을, 민준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세계는 1990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K-9 자주포와 천마, 비호라는 이름의 씨앗을 뿌리고는 결실을 기다리는 중이다.
민준은 서류 뭉치에서 발견한 숫자를 마주하고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지난 10년간 투입한 막대한 비용.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우리 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국산화율을 높여 국부 유출을 막는 방패가 되었다. 평화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동반할 뿐. 1990년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쟁, 즉 정보와 선진 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었다.
민준이 연구소를 나서려던 찰나, 정문 앞에 낯선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인물은 민준에게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 표지에는 붉은색 직인과 함께 생경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기밀: 1990년대 선진 무기 도약 프로젝트”
민준이 서류를 슬쩍 확인하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다뤄온 지상무기의 상식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이제는 다른 차원의 전쟁이 시작되겠군요.”
민준의 낮은 읊조림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무내미> 197호 7+8월호에서 다음 내용이 이어집니다.



1980년대 국방과학연구소의 경제 효과



당신의 연구 가치 테스트

주인공 민준은 부족한 인력과 예산에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었습니다.
민준의 동료인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의 가치를 선택해 사다리를 타보세요!

효율성
“1원 단위까지
예산을 아껴 국가에
기여하겠다!”
끈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자 기술을
완성하겠다!”
연결
“전장의 소통을
책임지는 완벽한 신호를
만들겠다!”
파괴력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화력을
구축하겠다!”
가치 선택 사다리 가치 선택 사다리
경제 효과의 제왕

5톤 확장식 유개차량

당신의 세심한 설계는 투자비 대비 무려 301.9배라는 전무후무한 예산 절감 기록을 세웁니다. 20억 원의 개발비로 6,175억 원의 가치를 창출한 당신은 연구소의 존재 이유를 숫자로 증명한 살림꾼 연구원입니다.

자주국방의 상징

현무 미사일

1982년 조직 축소의 아픔을 딛고 1985년 9월 21일, 마침내 하늘을 가르는 불꽃을 쏘아 올렸습니다. ‘백곰’의 정신을 계승해 1,694억 원의 예산 절감은 물론,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세운 강철 연구원입니다.

신호의 마술사

차기 FM 무전기

전장의 신경망을 우리 기술로 채우며 투자비 대비 151.95배의 효율을 달성했습니다. 13억 8,000만 원의 적은 예산으로 2,097억 원의 국부 유출을 막아낸 당신은 미래 정보전의 기틀을 닦은 소통 연구원입니다.

K-방산의 전설

K-9 자주포 & K-3 경기관총

이 연구는 훗날 10조 9,100억 원이라는 예산 절감 효과를 거두고 세계적인 수출 신화를 씁니다. 특히 K-3는 투자비 대비 163.8배의 성과를 냈죠. 당신은 오늘날 ‘K-방산’의 토대를 만든 글로벌 연구원입니다.

당신이 흘린 땀방울은 62조 5,000억 원의 경제효과라는 거대한 강물이 되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지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