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에서 만난
세 거목
글. 편집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위키백과
글. 편집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위키백과
충남 예산에서 시대를 앞서간 세 거인의 자취를 밟아봅니다. 불꽃같은 삶을 나라에 바친 매헌 윤봉길, 붓으로 당대를 풍미한 추사 김정희, 전통에서 현대로 나아간 예술가 고암 이응노. 충의사에서 추사고택, 수덕여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거닐며 고결한 정신을 따라갑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밀려오는 여름의 초입, 예산의 너른 품을 따라 걷기 좋은 계절이다. 여정은 충의사에서 시작해 추사고택을 거쳐 수덕여관으로 다다른다. 구국을 향한 결연한 의지, 학문을 대하는 꼿꼿한 태도, 암울한 시대에서 길어 올린 예술혼. 시시각각 짙어지는 녹음을 헤치며 이 땅을 거쳐간 눈부신 세 인물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껴본다.
[매헌 윤봉길] 1908-1932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은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로 침묵하던 세계를 흔들었고, 일제 심장부에 폭탄을 던져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천명한다. 그해 겨울 먼 일본 가나자와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스물넷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매 순간 떳떳했으며, 여전히 형형한 정신으로 살아 있다.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에 불씨를 지핀 사건이었다. 청년 윤봉길은 기꺼이 자신의 생을 바쳐 불꽃으로 타올랐다. 덕산면의 완만한 산자락 아래 자리한 충의사는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스물다섯 청년 매헌 윤봉길의 짧고도 뜨거운 생애가 깃든 장소다. 장부로서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유언을 남기고 망명길에 오른 매헌의 기개는 여전히 기념관 구석구석에 서슬퍼렇게 살아 있다. 전시 유물 중 백범 김구 선생과 교환한 회중시계를 마주하는 순간, 거사를 앞둔 청년의 초연함과 조국을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져 가슴 한편이 저릿하다. 시곗바늘은 멈추었을지언정 그가 염원하며 부르짖은 자주 독립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매헌이 탄생한 광현당의 소박한 방, 농촌계몽운동의 거점이었던 부흥원의 낡은 마루를 둘러보는 동안엔 시대의 어둠을 맨몸으로 통과한 대장부의 담대한 영혼과 조우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몸소 증명해 보인 그의 삶은 홍살문을 빠져나가는 우리에게 자유의 무게를 거듭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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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윤봉길평화축제
매헌 윤봉길의 희생과 독립 의지를 기리는 행사로, 이 고장의 구국 정신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문화의 장이다. 1974년 첫발을 내디딘 이래 매헌의 정신을 계승하고 평화의 가치를 공유해 온 이 축제는 매년 4월 말 그의 탄생지인 덕산면 충의사 일대에서 열린다. 경건한 추모 제례를 시작으로 부상놀이, 매헌 문학의 밤 등 다채로운 예술 공연과 전시가 이어진다.
[추사 김정희] 1786-1856
서예가, 실학자,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평생 벼루 10개에 구멍을 내고 붓 1,000자루를 닳게 했다는 전설의 인물. 추사체를 완성하고 아름다운 묵란을 남겼으며,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를 판독한 김정희는 도무지 한 사람이 이룬 성취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조선 영조의 딸 화순옹주는 이조판서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을 남편으로 맞는다. 김한신의 손자 김노경은 훗날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조선 후기를 빛낸 실학자이자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를 낳는다. 그의 가문은 왕이 하사한 땅에 53칸 규모 저택을 건립했고, 추사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학문의 꽃을 피운다. 세월의 풍파 속에 훼손되기도 했으나 1976년 복원을 거쳐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 34칸의 건물이 위대한 가문의 역사를 기억한다. 신암면 용궁리의 나지막한 언덕바지에 자리한 고택은 드넓은 예당평야를 마주하는데, 들녘 끄트머리엔 삽교천과 무한천이 유유히 흘러 배산임수의 형세를 이룬다. 고택과 기념관을 천천히 둘러보며 김씨 가문의 흔적을 응시하다 보면 권력의 부침과 혼탁한 정세 속에서도 꼿꼿하던 선비의 맑은 정신이 느껴지고, 추사가 남긴 글과 그림엔 한 인간이 도달한 궁극의 예술이 어른거린다. 추사는 제주 유배 중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라 썼다. 많이 읽고 쓰는 이에게서는 향기가 나고, 책을 오래 벗 삼은 이에게서는 남다른 기운이 풍긴다는 말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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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기념관
전시, 체험, 아트 숍을 아우른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한 추사기념관이 4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1층은 상설전시실과 기념품 상점, 2층은 기획전시실과 체험 공간으로 구성했으며, 옥상정원에 오르면 천연기념물 예산 용궁리 백송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추사의 서재 보담재를 재현한 독서 공간도 마련해 객을 반긴다. 공식 개관일은 추사 탄신일인 7월 11일이다.
[고암 이응노] 1904-1989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예산에서 유년을 보낸 이응노는 동양화의 필묵을 동원해 현대적 추상을 구축한 한국 미술사의 상징적 존재다. 1924년 조선미술전에 ‘묵죽’을 출품해 입선했고, 이후 활동 무대를 넓혀 콜라주와 추상 표현을 펼쳐 보인다. 오늘날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덕숭산 수덕사 일주문 옆에 소박한 초가집 한 채가 자리한다. 수묵화로 시작해 ‘문자추상’이라는 독보적 장르를 개척한 예술가, 고암 이응노의 안식처 수덕여관이다. 1944년 수덕여관을 매입한 고암은 1958년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 이곳을 작품 활동에 몰입하기 위한 아틀리에로 이용한다. 고즈넉한 뒤뜰을 천천히 둘러보며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거장의 고독한 뒷모습을 포개어본다. 낡았지만 단정한 문틀, 서까래, 툇마루엔 예술가의 정념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마당에 놓인 바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마치 춤을 추듯 뒤섞여 있는데, 이는 영고성쇠가 담긴 인간의 삶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고암의 암각화다. 거친 바위 질감 속에서도 끊임없이 꿈틀대며 생명력을 내뿜는 선이 예술가의 삶과 닮아 있다. 1960년대 동백림 사건에 휩쓸려 옥고를 치르는 중에도 고암은 손을 놓지 않았으니, 양식으로 주어진 밥알과 간장은 그의 조형 의지를 만나 작품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 투쟁을 화제 삼아 군중을 소재로 한 수묵화 연작을 선보이며 예술혼을 살랐다.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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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선미술관
예산 1경으로 꼽는 수덕사는 국보 대웅전과 보물 노사나불괘불탱 등 빛나는 문화유산을 품은 사찰이다. 6세기경 창건해 1,5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명맥을 이으며 지역민과 불교계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절 한편에는 불교미술 작품과 고암 이응노를 비롯한 근현대 한국 미술가의 작품을 아우르는 수덕사선미술관이 자리해 방문객의 발길을 붙든다.
++ 이런 곳도 있어요
살목지 & 예산황새공원 국가생태탐방로
황새가 날아와 쉴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예산황새공원 국가생태탐방로. 세 코스 중 황새바람길, 황새마을길 두 코스가 살목지를 경유해 눈길을 끈다. 광시면 대리에 위치한 농업용 저수지인 살목지는 공포영화 <살목지>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TV 프로그램 <심야괴담회> 등에 등장해 ‘심령 체험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트레킹하기 좋은 산책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