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March+April Vol. 189
뜨개질을 통한 플렉서블 플라즈마 직물의 2차원 3차원 자유 변형과 안전성
일상 속 국방과학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한
독(毒) 제거 국방기술
플렉서블 플라즈마

글. 편집실   사진제공. 정희수 박사  
사진. shutterstock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베일에 가려졌던 국방기술을 민간기술로 확산하며 환경·사회·미래를 지키는 ESG 선도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ADD의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이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플라즈마 기술을 진일보시킨 플렉서블 플라즈마도 그중 하나로, 생활 곳곳에서 신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독을 제거하는 기술, 플라즈마

빨간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쓰러져 버리는 백설공주.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먼저 ‘독’의 존재를 알게 된 이야기이다. 이처럼 ‘독’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독은 위험한 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이다.
인류 역사 이래로 동식물의 독부터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까지 자연에는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독이 존재했고 독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이어져 왔다. 바로 ‘해독’과 ‘제독’이다.
해독은 몸 안에 들어온 독성 물질을 내보내거나 그 작용을 약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제독은 몸 밖이나 주변에 있는 독성 물질을 제거하고 그 작용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기술에 있어 ‘제독’이란 말 그대로 화학·생물·방사능 등 유해 물질을 제거하거나 무해화하는 기술이다. 원래는 군사용 화생방(CBRN) 방어 목적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지금은 민간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어 그 쓰임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ADD도 오랫동안 제독 기술을 개발해왔고, 세계의 관심을 받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정희수 박사팀이 개발한 ‘플렉서블 플라즈마’ 기술이다. 2014년 시작된 이 연구는 2017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연구 결과를 실으며 세계 최초임을 인정받았다. 정희수 박사는 이 연구로 2019년도 제54회 발명의날 기념 대통령상 표창을 수상했다.
플라즈마는 고체, 액체, 기체와는 다른 네 번째 물질 상태이다. 기체에 아주 많은 에너지를 주면, 기체 속의 분자들이 전자와 원자핵으로 쪼개지면서 플라즈마 상태가 되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번개나 오로라도 이런 플라즈마 상태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플라즈마는 온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온도가 아주 높을 때는 핵융합 발전이나 용접 같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하고, 온도가 섭씨 100도 이하로 낮을 때는 전극을 이용해 공기 중에 방전시켜 독성 물질을 제거하거나 살균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플렉서블 플라즈마(Flexible Plasma)’는 말 그대로 유연한 성질을 가진 플라즈마로 평면뿐 아니라 곡면, 울퉁불퉁한 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

플렉서블 플라즈마 방전 직물의 상처치료, 제독용 장갑 형상

플렉서블 플라즈마 담요 시스템 개발

마음대로 생각대로, 플렉시블 플라즈마

이 연구는 ADD에서 화생방 보호 및 제독 분야를 연구해오던 정희수 박사가 평소 품고 있던 아쉬움에서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유연하게 휘어지면 좋겠는데···”
반도체, 의료, 환경, 심지어 우주 기술까지 여러 분야에서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플라즈마를 연구하던 중이었다. 대기 중에서 플라즈마가 방전되면 산소나 질소, 수분 등에서 나온 성분들이 활성화되면서 산소활성종(반응성이 매우 높은 산소 형태)과 질소활성종(질소를 기반으로 한 반응성이 높은 활성물)이 생기는데, 이들이 가진 강한 산화력 덕분에 거의 모든 살균, 제독, 환경 정화 작업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플라즈마 반응기는 단단하고 평편한 도체 전극을 사용해 제독 및 살균에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웠다. 둥근 물건은 어쩔 수 없이 전극에 닿는 면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표면을 제독하고 살균하기 위해서는 물건이 든 공간 전체를 이온화(전기를 띤 입자로 변하는 현상) 해야 해서 많은 전력이 소모됐다.
정희수 박사는 문제의 핵심을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단단하고 평편한 도체를 유연하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연구진들과 머리를 맞대어 연구를 거듭했고, 결국 전극(전기를 주고받는 부분)의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유연함의 정도가 상상 이상이다. 연구를 통해 개발된 유연전극은 한 가닥의 전선 형태로 이루어져 전극을 뜨개질하듯 하면 2차원이나 3차원 등 원하는 형태와 크기로 만들 수 있다. 직물 형태로 만들어 원하는 일정 면적을 감쌀 수도 있고, 주머니 형태 전극에 물건을 담아 전극에 닿는 물체를 제독·살균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입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게다가 기존의 플라즈마는 헬륨이나 아르곤 가스를 썼지만, 정희수 박사팀의 기술은 공기 중에 있는 산소나 질소를 이온화한다. 이온화 기체를 별도로 구비할 필요가 없으니 휴대성까지 뛰어나다.

플렉서블 플라즈마 직물의 뜨개질을 통한 ADD 로고 플라즈마 방전

피부미용, 상처치료, 살균도 남다르게

플렉서블 플라즈마 개발 이후, ADD는 이를 활용해 미래형 화생방 제독기 개념의 플라즈마 담요를 무기체계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제독이나 살균이 필요한 물건을 대기압 공기 플라즈마로 덮어 담요 형태로 감싸서 제독하는 방식을 오염된 무기체계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또한, 플라즈마 기술의 국방 분야 확대는 위해 플라즈마 처리 반응 활성수의 독성물질 제독 연구를 미 육군 산하 화생 연구센터 (DEVCOM-CBC)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민간 분야의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로 만드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방과학기술을 민간용으로 전환하는 사업에 참여해 플라즈마 관련 특허를 이용해 기술 상담을 수행했으며, 기술이전을 한 업체에는 특허의 통상실시권(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직접 사용을 허락하는 권리)을 허락하고, 업체에서 개발하고자 하는 플라즈마 항목에 적극적인 기술 자문을 실시하고 있다.
플렉서블 플라즈마는 다양하게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플라즈마가 표면이나 공기 중에 포함된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제거하는데 효과적이어서 환경, 식품, 바이오, 의료, 미용 분야 등에서도 관련 기술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예를 들면 ​얼굴의 굴곡에 완벽하게 적용이 가능한 미용용 플라즈마 마스크로 피부 미용과 미백에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의료용으로는 상처치료나 혈액 응고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플라즈마를 이용한 상처치료는 높은 임상 효과를 보이며 치료 기간도 짧고 합병증 발생률도 낮다. 농업용으로는 종자 발아, 성장률 및 작물 수확량을 개선하는 종자 처리에 사용된다. 플라즈마는 종자 표면의 특성을 수정하고 수분 흡수를 촉진하며 생화학적 과정을 개선하여 종자 발아를 촉진한다. 플라즈마를 처리한 반응수를 통한 패수 처리와 유해화학물질의 분해, 미세먼지 저감 등에도 친환경을 위한 연구개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국방과학 분야에서 개발된 독창적이고 선도적인 플라즈마 기술의 민수화는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 ADD의 기술이 국방을 넘어 산업 전반의 질을 높이고, 미래 산업을 열 수 있는 엔진으로 경제를 이끌며, 점점 더 많은 관련 제품으로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플렉서블 플라즈마를 활용한 미용용 마스크로 피부 미용과 미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