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가슴이 뛴다 ABC 버스킹 공연
글. 이현수 작가 사진. 한상무 작가
글. 이현수 작가 사진. 한상무 작가
꽃과 음악은 선물의 대표주자다. 우리는 누군가를 축하할 때 꽃다발을 건네고, 기쁜 장소에서 축가를 부르며 기쁨을 나눈다. 두 선물의 공통점은 받은 사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가 같은 공간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개한 벚꽃의 오후, 연구소 산책로 부근에서 버스킹이 열렸다.
벚꽃길은 끝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도 하얀 불꽃이 흐드러졌다. 연분홍 잎사귀를 바람이 흔들어 볼 때마다 봄의 속삭임이 들렸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산책길 가득한 꽃향기는 사람을 홀렸다. 그날 연구소 소원들은 평소보다 한층 느리게 걸었다. 곧 사라질 절경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마음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벚꽃길 사이로 흘러나오는 낯선 소리를 들었다. 활짝 핀 목련과 벚나무 아래 자리 잡은 버스킹 팀이 소리의 주인이었다.
공연은 장비 구성부터 남달랐다. 다이내믹 마이크, 디지털 피아노, 통기타, 앰프까지 모두 갖춘, 주로 홍대에서 볼 수 있는 무대였다. 앰프를 통해 연주 소리는 멀리까지 맑게 울려 퍼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소원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무슨 소리지?’하며 호기심에 꽃길을 건너 찾아온 소원들은 이내 무대 근처 그늘이나 계단에 자리 잡고 음악과 꽃구경을 함께 즐겼다.
버스킹 공연에 환호하는 소원들
버스킹은 총 네 팀이었고, 각자의 색깔이 뚜렷했다. 첫 번째 버스커는 사공현규 소원이었다. 10cm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케이윌의 <말해! 뭐해?>는 듣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부르기엔 어려운 곡들이다. 촉촉하고 간질간질한 음색으로 감정을 담아 노래하지 않으면 그 매력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운데, 사공현규 소원은 부드럽고 다정한 미성으로 이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두 번째 버스커는 이순주 소원이었다. 버스킹 모임의 창시자인 그의 선곡은 꽤 노련했다. 첫 곡은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 소피 마르소의 출세작 영화 ‘라붐’의 주제가로 한국에서는 올드 팝송 팬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이어서 부른 곡은 정준일의 신곡인 <우리도 사랑일까>와 성시경의 <너는 나의 봄이다>. 특히, <너는 나의 봄이다>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로, 감성적이고 섬세한 가사로 1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곡인 만큼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세 번째 버스커는 현장의 달콤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힙합 공연장으로 바꿔놓았다. “현실에 우물 안 같은 내 버림 내 삶 깊이”라는 가사에 맞춰 소원들은 저마다 손을 높이 들고 박자에 맞춰 까딱이며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드렁큰 타이거의 <Good life>,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Go back)>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남기윤 소원. 그는 무대에서 빠져나와 아예 관객석인 계단으로 들어가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고 호흡하며, 프로 래퍼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능숙하게 공연을 이끌었다.
마지막 무대는 통기타와 피아노 듀오였다. 박찬우(보컬, 통기타) 소원과 신원영(피아노) 소원이 그 주인공으로, 유미의 <별>,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 자우림의 <Hey Hey Hey>를 연창했다. 특히 <Hey Hey Hey>의 경우 포크록 감성의 블루스를 절제된 느낌으로 편곡해, 익숙한 곡인데도 신생 밴드의 곡을 듣는 것 같은 상큼함이 인상적이었다. 보컬 박찬우 소원의 탄탄한 중저음을 기반으로 한 담백하고도 울림 있는 목소리에 관객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쏟아지는 앵콜 요청에, 이들은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으로 버스킹을 마무리했다. 공연을 함께한 소원들의 얼굴에는 일하던 중 마주친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한 감동과 여운이 떠올라 있었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것은 국방과학연구소의 버스킹 모임 ABC(ADD Busking Crew의 준말이자 ‘지친 일과 중에 찾아온 ABC 초콜릿처럼 달콤한 휴식’을 의미)이다. 모임을 만든 사람은 이순주 소원. 대전 시내에서 약 2년간 버스커로 활동하던 그는 연구소에서도 버스킹을 한다면 소원들에게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일단 행동에 나섰다. 시작은 ‘홀로 버스킹’이었다. 2024년 4월 소내 게시판에 버스킹을 예고하고 혼자 장비를 갖추고 나타나 45분 동안 노래하기를 거듭했다. 그의 과감한 도전은 다른 소원들에게 ‘나도 해 볼까?’라는 열의를 불러일으켰다. 소원들은 참여하고 싶다며 그에게 연락하기 시작했고, 불과 1개월 후인 5월에는 팀원이 7명으로 늘어났다.
모임의 지속은 의외로 쉬웠다. 밴드라면 합주실도 알아봐야 하고,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멤버들 스케줄에 맞춰 연습해야 하지만, 각자 본인 노래를 부르는 연합 형태의 모임이라 그런 번거로움은 없었다. 각자 부를 곡을 정하고 연습해서 준비를 마친 뒤 버스킹 당일에 나타나면 충분했다. 물론 전날 리허설이나 친목,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가볍게 모일 때도 있지만 그 외에는 큰 부담이 없고, 심지어 회비도 없다. 업무와 병행하기에도 부담이 적어 이들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버스킹 공연을 이어올 수 있었다.
다른 팀원들에게 ‘주동자’라는 농담조의 애칭으로 불리는 ABC의 창시자 이순주 소원은 “ABC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라며 누구나 모임에 합류할 수 있으니 도전하라고 권했다. ABC 팀원들에게 버스킹의 기쁨을 묻자 저마다의 대답이 돌아왔다. 관객과의 교감이 좋아서, 밝은 미소를 보면 뿌듯해져서, 위로를 전한 것 같아서 등. 그리고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음악으로 관객과 하나 되어 너무 고맙다’고. 그들은 음악이라는 선물을 전하고도, 오히려 선물을 받은 상대방에게 고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