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따끔”한 사랑의 실천자
안장근 소원
글. 이현수 작가 사진. 한상무 작가
글. 이현수 작가 사진. 한상무 작가
40리터. 100번의 헌혈로 기증하게 되는 혈액의 무게다. 이만큼의 혈액으로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은 얼마나 되었을까. 국방과학연구소의 안장근 소원은 최근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 명예장’을 수여 받았다. 100회의 헌혈을 달성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고귀한 이웃사랑의 훈장을 달게 된 안장근 소원을 만나보자.
헌혈은 란셋(lancet, 채혈 도구)에서 시작한다. 검지 끝을 란셋으로 찌르면 피가 흘러나오는데, 이를 수집해 특정 용액에 떨어뜨리면 헌혈이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테스트를 거친 뒤, 피를 빼내기 위한 두툼한 바늘이 피부에 꽂힌다. 헌혈자의 몸속에서 빠져나온 핏방울들은 멸균 플라스틱 팩 속에 들어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윽고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고 있는 환자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환자의 핏기가 없는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잃을 뻔했던 온기는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얼마 후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환자는 의식을 되찾고, 소중한 가족들과 얼싸안으며 다행히 살아있음을 기뻐한다. 헌혈자는 한 사람을, 더 나아가 한 가정을 구했지만 직접 감사 인사를 받는 일은 없다. 환자도 헌혈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막연히 ‘수혈을 받았다’는 걸 기억할 뿐이다.
헌혈은 내 몸을 유지하는 소중한 피를 기증해 생사의 갈림길에 선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 고귀한 봉사활동이다. 하지만 헌혈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낭설, 저출산 및 고령화, 신종 질병 유행, 헌혈을 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건강관리 등의 문제로 국내 헌혈 자급률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 상황에서 꿋꿋이 헌혈을 지속해 마침내 100번의 헌혈을 이뤄낸 사람이 국방과학연구소에 등장해 귀감이 되고 있다. 안전관리센터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안장근 소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먼저 헌혈이 시급한 국내 상황을 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혈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매년 혈액을 수입하고 있고, 점점 수입 의존량이 커지고 있습니다. 혈액이 부족하면 치료용 의약품 또한 생산할 수 없어, 소아 면역 저하자나 중증 암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헌혈은 전혈 헌혈과 성분 헌혈로 나뉜다. 전혈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장 등 혈액의 모든 성분을 뽑아내는 것이고, 성분은 혈장이나 혈소판 같은 필요 성분만 걸러 빼내 가는 것이다. 안장근 소원은 주로 성분 헌혈 중 혈소판 헌혈을 해왔다. 혈소판의 경우 다른 성분들과 달리 생존 기간이 평균 4일 정도로 매우 짧기에(적혈구의 경우 유효기간은 35일이며 혈장은 급속 냉동하면 유통기한이 1년이다), 거의 언제나 재고량이 부족하다. 채혈에 소요되는 시간도 다른 헌혈과 달리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등 불편함이 많아 헌혈자들마저도 웬만하면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장근 소원은 100회 헌혈 중 79회의 헌혈이 혈소판혈장(혈소판과 혈장을 채혈) 또는 혈소판 헌혈일 정도로, 가급적 헌혈을 할 때 혈소판 헌혈을 택해왔다. 그는 소아 백혈병 환자를 돕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헌혈을 하던 초기에 한 언론 방송을 통해 소아 백혈병 환자의 부모님들께서 혈소판을 찾아 여기저기 구하러 다닌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간병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혈소판까지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낀 안장근 소원은 소아 백혈병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주기적인 헌혈은 물론, 인터넷 게시글에서 한 소아암 환우의 가족의 사연을 접하고 이들에게 신속히 연락해 직접 지정 헌혈(특정인을 위한 헌혈)에 나서기도 했다. 2차례의 지정 헌혈 이후, 양산에 거주하는 해당 환우의 어머니께서 고맙다며 여러 차례 문자를 보내 주셨다며 그는 뿌듯함을 전했다.
혈액 기증은 다른 기부나 봉사보다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긴 채혈 시간도 문제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나이 제한(혈소판 헌혈은 59세까지 가능)이 있으며, 체온·혈압·맥박이 범위 안이어야 하고, 감염병 여부도 검사한다. 약물을 복용한 뒤 4주~3년 등 특정 기간이 지나야 하며, 외국 여행 직후에도 헌혈은 불가능하다. 채혈 이후도 문제다. 헌혈 후에는 음주, 등산, 사우나, 찜질 등 많은 것을 조심해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헌혈을 했다가 현기증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안장근 소원 역시 헌혈을 지속하기 위해 꾸준히 건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담배는 전혀 안 피우고, 헌혈 예정일의 일주일 전부터는 술도 마시지 않습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헌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몇 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있습니다.”
헌혈을 하기 위해 건강해지자는 생각에 시작한 자전거 라이딩이지만, 꾸준히 타다 보니 어느덧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아라서해갑문∼낙동강하굿둑 구간, 4대강 등 1,853㎞ 완주 인증)까지 달성했다. 그는 주로 주말에 헌혈을 한다. 헌혈을 마친 뒤 반나절 정도는 독서를 하면서 몸의 회복을 기다린다. 헌혈 후 사우나, 찜질, 과격한 운동 등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물론 위기가 없진 않았다. “코로나 시절에 헌혈을 중단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감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었죠. 하지만 헌혈의 집에서 소독 등 만전을 다하고 있다고 했고, 제가 헌혈을 멈추면 당장 누군가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하니 답은 하나더군요.”
안장근 소원은 최근 헌혈증 55장을 국방과학연구소 헌혈증 기부 행사에 기증했다. 연구소 창설 55년을 기념하는 취지에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소원들도 기부하는 모습을 보며 연구소에 대한 자부심과 다른 기부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현재 네이버 긴급헌혈봉사단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도 매달 기부하고 있는 그는 헌혈하는 문화가 한국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신앙을 전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혈 전도(웃음)가 그리 쉬운 게 아니더군요. 바늘에 공포를 느끼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하지만 다행히도 저희 가족 같은 경우에는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헌혈은 절대 못해’에서 ‘기회 되면 헌혈을 해보겠다’로 생각을 바꿔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희 네 가족이 함께 헌혈을 하러 가고 싶네요.”
현재 100회 넘게 헌혈을 한 사람의 비율은 0.016%에 불과하다.(2025년 4월 기준 대한적십자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람은 8,400명이다.) 안장근 소원은 최근 대한적십자의 헌혈 유공 명예장을 수여받았다. 헌혈유공장은 다회 헌혈자에게 주는 포상으로 헌혈 횟수에 따라 금장, 은장 등을 수여하는데, 100회 이상부터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해 그 헌신을 기리고 있다. 안장근 소원 역시 최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는 이에 대해 단순한 만족을 넘어선 감격을 느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제가 이 나이가 되고 나니,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되더군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기게 되니, 저도 소박하게나마 이 세상에 무언가를 남겼구나, 저도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잘 살았구나 싶어 감격했습니다.” 그는 100번의 헌혈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헌혈을 계속할 생각이다. “최근 헌혈의 집에서 대기하다가 300회 이상 헌혈하신 분들의 명패가 붙어있는 걸 보게 됐습니다. 훌륭한 분들의 이름을 눈앞에 두고 보니, 저절로 다음에 꼭 다시 와서 헌혈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더군요.”
그의 첫 헌혈은 거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헌혈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몸무게 기준에 못 미쳐 헌혈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헌혈하고 오는 모습을 보며 아쉬워했던 그는 대학교에 진학한 뒤 적정 체중이 되자마자 헌혈의 집을 찾았다. 그 후 오랫동안 조용하고 묵묵하게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 안장근 소원. 그는 헌혈을 ‘생명 나눔’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해 주는 놀라운 나눔이 바로 헌혈이다. 다시 숨 쉴 수 있는 하루, 가족과 껴안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순간,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저녁시간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얼마 뒤 안장근 소원은 101번째로 헌혈의 집을 찾아갈 것이다.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나눠주는 조용한 헌신이 이제는 그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