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색, 섬세한 숨결이 번지다 ADD 수채화 동호회
글. 이현수 작가 사진. 박기현 작가
글. 이현수 작가 사진. 박기현 작가
투명한 명암을 입히기 위해 그들은 붓을 종이 위에 놓으며 종종 숨을 멈춘다. 조용한 가운데 수채화들이 생명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마치 그리는 사람의 숨결을 그림 속에 불어넣는 것만 같다. 매주 목요일 오후 여섯 시마다 함께 모여 물빛색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ADD 수채화 동호회를 만나보자.
“세상에, 너무 잘 그렸잖아!” 누군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그림 그리던 손을 멈추고 우르르 일어나 해당 그림 주변을 둘러싼다. 쑥스러운 웃음소리, 이렇게 어려운 기법을 어떻게 이렇게 잘 구현했느냐는 부러움과 응원이 듬뿍 담긴 환한 목소리. ‘진짜 잘했다’라며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김에 윤향덕 회원이 가방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 나눠줬다. 시아버지가 자신이 그린 수채화를 표지로 채택해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까치가 사과나무에 내려앉은 청초한 그림이었다. ‘왜 이렇게 잘 그렸냐’라며 찬사가 쏟아졌다. “사실은, 얼마 전에 선생님이 사과나무와 까치를 그리라는 주제를 내주셨었죠? 제가 이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고 도와주신 거예요”라는 말에 “뭐야 그럴 수가!,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라면서 다시 한번 쾌활한 웃음이 번진다.
잠시 뒤 세미나실 안은 조용해진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림에 열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채화는 섬세함이 생명. 조심스럽게 물감을 골라 농도를 맞추고, 색을 붓에 한껏 머금은 뒤, 하얀 종이에 살며시 떨어뜨린다. 팔레트는 점점 지저분해지고, 붓끝은 거듭 종이에 찍어 한쪽으로 휘어지지만, 종이 위의 풍경은 점차 또렷해진다.
이곳 ADD 수채화 동호회가 만들어진 것은 2023년도 8월 3일이다. 창시자는 이순옥 회원. 그림 계열에 원체 관심이 있던 그가 ‘수채화 동호회가 ADD에 있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것은 2023년 7월 즈음이었다. 실천력 ‘만렙’인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내 게시판에 ‘그림 그릴 사람을 모집합니다! 공간의 한계를 감안해 선착순 11명 한정’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글을 쓰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지만, 웬일인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16명이 지원하며 모집 인원을 훌쩍 넘겨 버렸다.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한 이순옥 회장은, 함께 모임을 만들자고 뜻을 모은 상태였던 임자영 회원과 상의한 끝에, 신청해 준 16명 모두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현재 회원은 박영근, 백옥현, 양미정, 윤향덕, 이기두, 임자영, 장성훈, 정근섭, 이순옥, 류재원, 최영미의 11명이다. 맡은 업무가 바빠져 ‘잠정 보류’인 회원들을 제외한 숫자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6시에 모여 두 시간 동안 선생님의 지도하에 진지하게 수채화 그리기에 열중한다. 물론 시종일관 진지하지는 않다. 농담과 웃음, 칭찬과 응원으로 시끌벅적하다가 다시 그리기에 몰입해 조용해지기의 반복이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것’. 이는 세종시에서 7년 넘게 교습소를 운영하다가 임자영 회원에게 섭외된 류소라 강사의 지도 방침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은 정답이 없다. 입시 미술도 아니고 취미로 미술을 한다면, 더더욱 정답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동호회 회원들이 알려진 방식에 고집하지 않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개성과 기법을 찾을 수 있도록 다독이고 이끌어 가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큰 길’이라고 한다면, 자기만의 개성을 발견하고 그걸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샛길’이라고 할 수 있겠죠. ADD 수채화 동호회 회원들은 자신만의 샛길을 적극적으로 찾아가고 있어요. 일례로, 원래 수채화는 명암을 진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은은하게 표현한 회원이 있었고요, 밑그림을 진하게 표현해서 수채화가 아닌 일러스트처럼 보이게 그린 회원도 있었죠. 내심 놀랐습니다.”
류소라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자신만의 창조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수채화를 시도하는 회원은 이외에도 많았다. 한 회원은 수채화와 한국화의 크로스오버를 노리고 있었고, 수채화와 유화를 섞은 느낌의 비구상화(추상화)를 그리고자 노력하는 회원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 어떤 매력 때문에 수채화를 선택하게 됐을까. 시작 계기는 다양했다. 박영근·최영미 회원은 부부 사이로, 박영근 회원이 동호회에 들어와 그림을 그리던 중 ‘재미있다’며 참가할 것을 권해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 이곳을 다니고 있다. “제가 (아내를) 인도했죠”라면서 호탕하게 웃어 보인 박영근 회원은, 여행지에서 간단하게 5분 스케치를 하고 싶어서 관련 연습을 할 생각으로 문을 두드렸다가 지금까지 ‘발목 잡혔다(웃음)’라고 말했다. 최영미 회원은 원래 <캔디캔디>, <베르사유 장미>를 보던 만화 애호가였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를 따라 그리던 실력이 있다 보니 그림 스케치 자체가 능숙하고 그리는 속도도 회원들 중 가장 빠르다. 이외에도 서예를 하다가 들어온 회원, ‘퇴직하고 그림을 그리기’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어쩌다 보니 퇴직하기 한참 전인데도 동호회에 합류하게 된 회원도 있었다. 왜 수채화에 푹 빠지게 된 걸까. 퇴직하고 나서 이곳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근섭 회원은 수채화의 매력 중 하나는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림을 그리며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죠. 강물, 하늘을 보면 어떤 물감을 써서 어떻게 그려야 할까 뜯어보게 되니까요. 자연에는 똑같은 색이라는 게 없더라고요. 나뭇잎 색깔마저도 각자 다 다르더군요. 사물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이 생겼죠.”
수채화는 청량함이 매력이다. 하지만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선 생각보다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물감의 농도를 맞추는 것부터 어렵고, 종이 위에서 어디로 번질지 모르는 불확실성도 난감하다.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유화와 달리 수채화는 덧칠하면 지저분해진다. 어려운 작업인 만큼 그림 그리는 장소의 분위기, 함께 그리는 이들과의 조화도 중요하다. 2024년 12월에 들어온 ‘막내’ 백옥현 회원은 ADD 수채화 동호회 회원들 덕분에 그림 그릴 힘을 얻는다고 전했다. “여기 동호회 회원분들이 다들 칭찬 요정이세요. 그림을 그리는 게 처음인데 제가 얼마나 잘 그렸겠어요, 그런데도 자꾸만 다가오셔서는 ‘와, 너무 잘 그렸다’라고 폭풍 칭찬을 해주셔서 ‘내가 혹시, 그림에 소질이 있나?’하고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고, 더 열심히 그리게 되더군요.”
서로의 칭찬과 응원에 지원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이들. 이들이 나눈 두 시간은 진지한 열정과 진심 어린 미소가 교차하는 뜻깊은 교류였다. 새로운 회원도 이곳에 합류해 이와 같은 즐거움과 그림에의 열정을 함께 누려도 될까. 이순옥 회장은 ‘신입 회원은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말했다. “즐거움은 나누는 게 좋잖아요. 업무에 시달려 지쳐 귀가했던 어느 날, 제 방 벽에 핀셋으로 꽂아뒀던, 제가 기존에 완성했던 수채화를 본 적이 있어요.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금세 즐겁고 행복해지더라고요. 더 많은 소원들이 그런 기쁨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향후에는 소내 전시회도 열어볼 욕심인 ADD 수채화 동호회. 고운 색으로 물든 건 수채화만이 아니었다. 팔레트 위에서 조합된 물감들처럼, 종이에 터지듯 번지는 투명한 색감처럼, ADD 수채화 동호회 회원들은 서로의 유쾌함과 너그러운 응원, 수채화에 대한 조용하고도 뜨거운 열정에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