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May+June Vol. 190










국방과학 시네마

영화로 풀어본
AESA 레이더 최성희 박사

글. 편집실   사진. 한상무 작가, 네이버 영화, shutterstock

영화로 풀어본 AESA 레이더 최성희 박사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하늘 위의 긴박한 전투.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핵심이 되는 기술이 있다. 적의 전투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특정하는 기술, 레이더다. 이 기술의 국산화를 주도한 과학자가 있다. AESA 레이더 개발 성공으로 2025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 포장을 받은 최성희 박사를 만나보자.

Dr. Seong Hee, Choi

이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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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1.~2010. 12. 해군 전투체계용 탐색레이더 체계개발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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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019. 11. 항공기탑재 능동위상배열레이더 기술(응용/시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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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021. 6. 한국형전투기(KF-21) AESA 레이다 S/W 개발 분할사업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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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2021. 12. 전투기탑재 다중모드 사격통제레이더 기술(시험개발) 과제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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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 현 한국형전투기(KF-21) AESA 레이더 체계 개발 수행 중



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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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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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국가연구개발 중간평가 우수과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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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21. 2025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 과학기술 포장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전투기의 눈’

“하늘에서는 생각하면 죽게 돼. 네 본능을 믿어!” 조종사가 된 절친의 아들에게 무사히 살아 돌아올 것을 주문하는 매버릭(피트 미첼)의 대사다. 영화 <탑건>은 주연배우인 톰 크루즈를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 1986년에 시리즈의 첫 작품이 나왔으며,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공중 전투 장면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후 36년이 지난 최근, 속편 <탑건:매버릭>이 개봉했다. 이번 편 역시 적기 탐지, 최신 전투기 등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미국 해군에서는 대중의 인식도를 개선하고 젊은 관객들에게 애국심을 불어넣고 해군 입대 증가를 이끌어 냈다며, 탑건 시리즈에 해군 최고 등급 공로상까지 수여했다.
적국의 우라늄 시설을 폭파하는 위험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탑건 매버릭의 주요 줄거리로, 여기서 전투의 핵심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전투기의 눈’이라 불리는 레이더다. 이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파를 사용하여 물체의 거리, 속도, 방향을 감지하는 시스템으로, 레이더 성능이 뛰어난 쪽이 전투에서 매우 유리하다. 극 중에서는 적국의 목표 시설이 수많은 대공미사일과 최신 전투기들을 구비하고 있어. 적국의 레이더에 발각되지 않고 협곡에 바짝 날아서 침투하는 것이 작전의 주요 내용으로 등장한다. 레이더는 크게 지상용과 전투기용으로 나뉜다. 둘은 운용 환경, 설계, 주파수 대역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지상용은 고정된 위치에서 넓은 범위를 탐색하므로 대형 안테나와 고출력 장치가 필요하고, 전투기는 기체 내부에 탑재되는 만큼 소형화와 안정성이 중요하다. 최성희 박사는 지상용보다 전투기용의 소프트웨어 설계가 훨씬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전투기 레이더는 기체의 노즈(Nose) 부분, 즉 앞부분에 장착돼야 합니다. 약 1m 안팎의 작은 공간 안에 설치돼야 하니 지상 레이더보다 무게, 면적, 소비 전력 면에서 훨씬 큰 제약을 받습니다. 또한 파일럿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지상 레이더와 비교해 소프트웨어 설계가 복잡하고 까다롭죠.“


저희 팀원들은 맡은 일에 성실했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강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 팀에
모였다는 게 제게는 기적이었죠.
‘천우신조(天佑神助)’였죠,
제 인생의 최고의 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세대 AESA 레이더의 혁신과 실전 적용

최성희 박사와 그가 이끄는 팀은 전투기 레이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전투기 레이더의 발전단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세대는 가장 구형인 기계식 레이더(MSA, Mechanically Scanned Array). 안테나를 표적 방향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한 표적만 추적 가능하고, 속도도 구동장치의 작동 형태에 따라 비교적 느릴 수밖에 없다. 2세대로 등장한 것은 PESA(Passive Electronic Scan Antenna)다. 1세대보다 훨씬 탐지가 빠르고, 360방향의 스캔이 가능하다. 가장 최근의 발전된 형태가 AESA 레이더(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일명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다. 매버릭에 등장한 작전 수행에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레이더도 AESA다. (F/A-18, 일명 ‘슈퍼 호넷’ 전투기에 탑재된다.) AESA 레이더는 기존의 전투기 탑재 레이더를 뛰어넘는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국익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미국과 러시아 등 극소수 군사강국만이 보유한, 자국 안보와 직결된 극비 기술이다. 최성희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성공한 것이 바로 이 AESA 레이더의 개발 및 적용이다.
“기계식 레이더와 AESA 레이더의 차이점은 형광등과 LED의 관계를 떠올려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형광등은 하나의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LED는 수십~수백 개의 반도체 소자(LED 칩)로 구성돼 제각각 빛을 발하죠. AESA 레이더도 수백 개가 넘는 수많은 송수신 모듈이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수백 개가 넘는 전파 송수신 모듈<일명 T/R(Transmit / Receive)>,쏘아보낸 전파를 받아 처리한다)이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기계식처럼 안테나를 움직이지 않고도 방향 전환이 가능하니 긴급한 작전 수행에서 특히 유용하다. 기계식이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본다면, AESA는 보지 않고도 기척을 감지하는 형국이다. 자유자재로, 즉각적으로 레이더망을 운용하니 4개 표적을 동시에 정밀 추적할 수도 있고, 하늘, 지면, 바다의 전반적인 상황을 동시에 <공대공(공중과 공중)/공대지(공중과 지상) 또는 공대공/공대해(공중과 해상)>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성희 박사는 AESA 레이더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전투기탑재 다중모드 사격통제레이더 기술(시험개발)>의 책임자로서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해냈다. 이와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 4월 21일에 열린 <2025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 포장 과학기술 포장을 수상했다.

훌륭한 팀원과 관계 기관 협조는 ‘천우신조(天佑神助)’

AESA 레이더 개발의 성공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4년 미국은 한국과의 절충 교역에서 AESA 레이더 핵심 기술을 이전해 주기로 해 놓고, 한국이 F-35 전투기 구매 계약을 확정하자 말을 바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은 국내 개발을 결정했지만 당시에는 개발까지 20~30년이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2016년 ADD에서 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7년이 지난 2023년 5월, AESA 레이더의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것. 기존 업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더 기술을 보유하고도 개발에 10년 이상이 걸렸던 것과 비교해 경이로운 속도였다. ‘빨리빨리’로 유명한 한국인만의 저돌적인 추진력이 발동한 성과일까. 최성희 박사는 개발까지 걸린 속도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눈부시게 빨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개발의 기반이 되는 기본적인 연구는 이미 이전부터 시작돼 있었습니다. AESA의 핵심인 반도체 소자 관련한 연구는 이미 2009년부터 시작했죠. 기초적인 연구가 탄탄히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첨단 무기의 핵심 기술 개발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던 거죠.”
또 하나는 국내 기관들의 협조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는 점이다. 최 박사는 공군의 협조를 받아 실제 비행시험으로 AESA의 기능 및 성능을 검증했던 일을 예로 들며, 공군·방위사업청·항공기레이다체계개발단 등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함을 전했다. 물론, 가장 큰 동력은 역시 팀원들의 헌신이었다. 그는 중압감 속에서도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한 훌륭한 동료들이 없었으면 AESA 레이더의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했다.
“개발 진행 과정 중 수없이 많은 시련과 고난이 우리 팀을 가로막더라도 저희 팀원들은 맡은 일에 성실했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강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 팀에 모였다는 게 제게는 기적이었죠. ‘천우신조(天佑神助)’였죠, 제 인생의 최고의 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