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eptember+October Vol. 192




별빛 속으로

보이저 2호에서
<안될과학>까지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
과학 크리에이터 ‘항성’
Sung Ju Kang

글. 편집실   사진. 박기현 작가

보이저 2호에서
<안될과학>까지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 과학 크리에이터 ‘항성’

전자레인지는 사용할 줄 알아도, 여기에 적용된 과학기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일상에서 과학기술들을 끊임없이 사용하면서도 정작 어떤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지 모르는 대중들은 좀 더 친절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과학과 대중 사이에 꼭 필요한 다리 역할을 해온 134만 유튜버, 과학 커뮤니케이터 항성(본명, 강성주 박사)님을 만났다.

‘에밀리 디킨슨’같은 과학

그의 시는 ‘번역’되어야 했다. 모호하고 압축된 시어, 갑작스러운 중단, 대시(-)와 대문자, 세미콜론(;)의 독특한 사용, 어렵게 구성된 불친절한 시. 작성자가 죽은 뒤에야 그 안에 담긴 존재론적 사유가 발견됐다. 생과 죽음, 고독, 무(無) 같은 인간의 근원을 탐구했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다. 과학은 인류에게 언제나 에밀리 디킨슨이었다. 알았지만, 또한 전혀 몰랐다.
일상을 떠받치는 튼튼한 주춧돌이자 문명을 이룩한 주인공인데도, 함께 곁에 있었고 온 세상을 연결했는데도, 과학이 외치는 말을 사람들은 대체로 알아듣지 못했다. 과학은 줄곧 ‘차가운’ 언어였고, 대중은 ‘따스하게’ 설명해 주길 바랐다.
소통에 취약한 과학자들과 공감어린 대화를 원하는 대중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꽤나 오랫동안 고급 과학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가깝고도 멀었던 이 거리를 메우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과학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 설명해 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베라 루빈(천문학자, 암흑 물질 연구에 기여)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입학이 거부되기도 했고, 노벨상을 타기에 충분한 업적을 쌓았는데도 결국 수상을 못 받았죠. 비록 그의 이름을 딴 천문대가 칠레에 세워지긴 했지만요.”
어렵고 복잡한 과학기술을 유머와 스토리텔링, 은유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항성(강성주 박사)을 만났다. 그는 134만 구독자(2025. 9. 17. 기준)를 보유하고 있는 <안될과학>의 ‘랩미팅’ 코너 진행을 맡고 있으며, EBS 과학 토크쇼 <취미는 과학>에 고정 출연 중인, 국내에서 손꼽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그는 왜 과학자라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길 대신, 아직은 낯선 직업인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일까. 그의 결정 배경에는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가족과 칼 세이건의 제자 닐 타이슨(Neil Tyson)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천문학과 학생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망원경으로 별 보여주는 행사를 하거든요. 저도 미국 유학 시절에 그 행사에 참여해 별에 관한 설명을 했어요. 보통 이럴 때는 애들은 행사에 참여시키고 부모는 쉬잖아요.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둔 한 아버지께서 설명을 집중해서 들으시는 거예요, 아이에게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한 가족의 사례였지만, 소통의 중요성을 실감했죠.”
이후 닐 타이슨과의 만남도 있었다. 칼 세이건의 제자이자 방송인으로도 활약 중인 그가 동문(선배)이었던 덕분에 직접 만나 대화할 기회를 얻었던 항성은,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진로희망을 밝히자) 한국은 전문가인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한 상황이구나, 네 연구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임해야겠네”라는 조언을 받았다. 항성은 그의 방향 제시를 받아들여, 5년간 한국천문연구원, 2년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시작은 자폐 스펙트럼 가족이었고, 부스터(booster)는 닐 타이슨이었던 셈. 또한 과학자로서의 경력은 그의 현재를 만드는 토대가 됐다.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면, ‘소통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문가의 자료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일 뿐이다. 대중과 과학자의 다리를 잇기 위해서는 관심사의 일치를 끌어내야 한다. 둘의 궁금해하는 부분이 반대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이 연구가 어떻게 그런 결과에 도달했는지’를 궁금해하지만, 대중은 그것보다는 ‘그래서 나와(내 생활과) 무슨 상관인데’를 묻는다. 양쪽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항성과 <안될과학>팀은 두 시간씩 2~3번의 집중적인 회의를 하고, 자료를 검토하고, 리허설을 하며 어떻게 대중이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해당 연구와 대중의 일상이 어디에서 맞닿는지, 토론과 고심을 거듭해 영상을 제작한다.

창조변화
創新

항성
과학 커뮤니케이터

대중 속으로
들어간 과학
창신(創新)의
길을 걷다

134만 구독자를 보유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항성(강성주 박사)

양자기술의 역할과 지속가능한 과학

<안될과학>의 랩미팅에서 최근 다뤘던 주제 중, 국방과 관련이 가장 깊은 것은 무엇일까. 항성은 최근 다뤘던 주제 중 ‘양자 기술’을 꼽았다.
“전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조건은 ‘보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때는 영국이 독일의 비행기 전투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레이더가, 걸프전 때는 적의 동태를 위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GPS(위성항법 시스템)가 전투를 좌우했죠. 상대의 움직임을 봐야 피하던가 공격하던가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양자 기술은 국방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 될 겁니다. 군사 암호체계와 정보통신 등을 무력화하거나, 우리의 정보를 방어하고, 도청·감청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니까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그는 우리나라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속 가능성’으로 제시했다. 그는 AI 정책을 예로 들었다. 특정 정부 때 집중 육성을 약속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지원이 중단됐다. 당시의 발전 계획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면 현재의 AI 시장에서 한국이 타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을 것이라며, 정치적 이념에 따라 특정 과학기술 지원·확보를 중단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의 경우 과학기술 그 자체로만 평가해야지, 특정 정치 세력과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과학적인 검토 없이 해당 기술이 정치화 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그의 관점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이 무엇인가에도 담겨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단순히 대중과 과학을 이어주는 다리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대중의 꾸준한 관심과 높은 이해를 이끌어내고, 그들이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8살 소년의 꿈은 이루어진다

항성의 시작은 보이저 2호의 사진이었다. 1977년 발사된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는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의 고화질 컬러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다. 그가 이 사진들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지금도 우수과학도서로 읽히는 <Why?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지구의 모습도 제대로 모르던 상태였는데, 목성과 토성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특히 토성의 고리가 흥미로웠어요. 공중에 누가 씌워놓은 것처럼 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우주에 매료됐죠.”
그는 아버지에게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졸랐다.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몰라 한 달 넘게 고생하다가 마침내 또렷한 목성을 볼 수 있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8살의 어린 나이일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과학에 일편단심이었던, 예명까지 그에 대한 애정을 담아 만든 항성. 우주가 알고 싶다고 발돋음 하던 소년은, 이제 본인이 느낀 감동을 남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리는 리더로 성장했다.

Profile.

항성(예명, 강성주 박사) 과학 커뮤니케이터 한국천문연구원, 국립과천과학관 출신.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하고,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에서 진행을 맡아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EBS 과학토크쇼 <취미는 과학>, 사피엔스 스튜디오 <어쩌다 어른D>등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