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로
풀어본 웨어러블 슈트
홍만복 박사
글. 무내미 편집실 사진. 박기현 작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무내미 편집실 사진. 박기현 작가
출처. 네이버 영화
인간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었다. 전장에서 웨어러블 슈트를 입은 군인이 종횡무진으로 적을 압도하며, 튕겨나가듯 몇 미터나 점프한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등장한 엑소 슈트의 성능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엑소 슈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웨어러블 슈트를 연구하는 홍만복 박사를 만나, 현재의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들어보았다.
이 력
·2003~2009 박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2009~2011 국립암센터 박사후연구원
·2011~2013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박사후연구원
·2013~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근력증강로봇 메커니즘 설계/분석
그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셋이었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 종족 미믹을 맞이해 분투한 윌리엄 빌 케이지(톰 크루즈), 아군의 승리를 이끌어낸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베르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은 리타(에밀리 브런트), 그리고 그들이 착용한 웨어러블 로봇 병기 ‘엑소 슈트’다. 금속 프레임과 모터, 구동기 등으로 구성돼 병사의 근력과 이동성을 증강시키는 이 장비는 적과의 접전에서 현란한 액션을 선보인 일등 공신이었다. 외계 종족 미믹은 촉수 같은 몸체, 자유자재의 빠른 움직임, 집단지성, 보병과 장갑차를 파괴하는 근력을 갖추고 있어 일반적인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괴생명체였다. 하지만 엑소 슈트를 입었기에 병사들은 지면에서 튕기듯 솟아올라 적의 촉수를 단칼에 베어내고 무거운 물체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속도로 달리며 적의 공격을 피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외계 생명체의 침략을 맞이한 상황에서 지구의 비전투 장교 케이지가 강제로 전장에 투입돼 우연히 타임 리셋 능력을 얻은 뒤 같은 전투를 무수히 반복하다가 리타와 동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다. 극장 예매 1위, 누적관객 470만을 기록했으며 당시 톰 크루즈가 ‘의리’를 외쳤던 짤로도 SNS에서 크게 회자됐다. 원작은 <All you need is kill(사쿠라자카 히로시)>. CG가 아니라 실제의 모형 슈트를 제작해 촬영했는데 최대한 가볍게 설계했음에도 40kg~60kg에 달하는 완전 군장(38kg)을 넘어서는 무게였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 흥행의 일등공신이었던 엑소 슈트 개발은 어디까지 왔을까? 과학기술로 구현은 가능한 것일까? 2013년 8월 ADD에 입소 후 이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를 이어온 홍만복 박사는 “그렇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답했다. 그는 영화에서 나온 엑소 슈트를 구현하려면 경량화, 안정성, 배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사가 슈트를 착용한 채 빠르게 움직이려면 무게가 가벼워야 하고 무장 발사의 충격에 견딜 만큼 안정적인 구조여야 하며 엑소 슈트에 내장된 다양한 무기와 장비를 구현할 대용량·고효율 배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만복 박사와 그가 이끄는 팀은 다양한 종류의 웨어러블 슈트를 연구하고 있다. 본래 웨어러블은 크게 외골격형(하드 로봇)과 소프트 슈트형(소프트 로봇)으로 나뉜다. 외골격형은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 단단한 프레임으로 구성된 일명 ‘근력형’이고, 소프트형은 직물, 와이어 등 유연한 소재로 구성된 ‘근력보조’형으로, 탈착이 쉽고 의료나 재활 분야에서도 활용된다. 그가 연구하는 것은 소프트형이며 군사용 웨어러블 슈트다. 그는 개발 중인 웨어러블 슈트를 들어 보였다.
“이 장비는 상륙이나 탈출 작전에 유용합니다. 좀 더 빠르게,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한 마디로 기동력을 보강하는 장비인 거죠. 근육을 덜 쓰게 만들어 피로도를 낮추는 원리입니다.”
타이밍과의 싸움이다. 근육 피로를 줄이려면 사람이 다리 등을 구부렸다 펴는 순간에 정확히 맞춰 적절한 보조력을 제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보조하면 효과가 떨어지며 보조력 역시 부족하거나 과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매우 섬세한 동작을 요구하는 셈.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에는 IMU(관성측정장치, Inertia Measurement Unit)가 있다. 이는 사람의 동작에 관련한 정보(회전, 속도)들을 센서를 통해 수집해 움직임이나 자세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장비다. 자세를 파악한 뒤에는 모터에 신호를 보내 고무밴드, 와이어 등 슈트를 구성하는 보조 부품들이 적절히 움직이도록 제어한다.
“사람이 걷는다는 건 반복되는 동작의 연속이죠. 그래서 수많은 걷기 동작 데이터를 바탕으로 착용자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착용자의 속도나 보폭 같은 특성에 맞춰서 보조합니다.”
홍만복 박사는 복합신호기반 인체기계 고속동기화 제어기술(2020-2024)에 이어 선택형 다관절 보조를 위한 의복형 유연 착용 로봇(2023-2027)의 두 단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웨어러블 슈트 개발 연구에서는 고관절과 무릎관절을 각각 따로 마련하지 않고 하나의 모터가 상황에 맞게 두 관절을 오가며 보조해 주는 스위칭 기술을 적용했다. 웨어러블 슈트는 해병대 등 군부대에서 관심이 많은 장비다. 현대전은 대규모 폭격과 공중전, 드론 타격 등 개별 전투원의 직접 개입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지만, 전투 상황을 종결하는 인력만큼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 때문에 웨어러블은 ‘게임 체인저’라고 불릴 정도로, 전장의 판도를 바꿀 중요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무기가 고성능으로 진화하면서 걸림돌로 지적되는 부분은 장비의 무게인데요. 이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바로 웨어러블 슈트입니다. 저는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병사들의 근육 피로를 덜어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능동·수동 복합 동력 전달 구조와 무동력 타입을 통한 에너지 절감과 착용성 개선 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어요.”
국방과학연구소 소프트 타입 근력 증강
슈트 연구팀은 하나의 모터로 고관절과
무릎관절을 함께 지원하는 ‘스위칭 기술’을
웨어러블 슈트에 구현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프트 타입 근력 증강
슈트 연구팀은 하나의 모터로 고관절과
무릎관절을 함께 지원하는 ‘스위칭 기술’을
웨어러블 슈트에 구현했다.
그는 오래전의 꿈을 이룬 사람이다. 중학생 때의 국방과학연구소와의 흔치 않은 인연은 그를 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다.
“중학교 때 저희 집 근처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어요. 서울의 ‘홍릉기계공업’이었던 시절이죠. 아침저녁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구인지 궁금해했어요. 이후 그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됐고 나도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세월이 지나 제가 여기서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잊혀진 꿈이 현실이 됐다. 중학생 소년이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정체를 궁금해했던 기관은 이제 그에게는 12년 동안의 연구를 쌓아 올리는 데 힘을 보태준 꿈을 실현하는 고마운 장소가 됐다. 그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공을 주변 동료와 가족들에게 돌렸다.
“저는 ‘빚’을 진 분들이 많습니다. 설계·제어, 알고리즘 등에서 신영준, 우한승, 김광태, 김용철, 이명현, 최의중 박사님의 헌신적인 도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아내, 누님, 부모님은 제가 넘어지지 않게 줄곧 잡아 주셨고요.”
더불어 ADD의 연구환경도 현재까지 성장하는 데 듬직한 토대가 되어주었다고 밝혔다.
“다른 연구기관들은 과제 중심 연구로 경쟁해야 하기에 유행에 맞는 아이템을 적용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일이 잦습니다. 하지만 ADD는 오랜 기간에 걸쳐 특정 주제를 연구할 수 있어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의 성숙, 장기간의 로드맵을 바탕으로 한 일관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기동 하지 근력증강로봇의 고속동기화 제어기술
(선도/시험, 2016-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