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거듭하는 전쟁의 신
포병 무기
“포는 전쟁의 신이다.”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 스탈린은 1944년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현재도 군 전문가들은 여전히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먼 거리에 떨어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인 데다가, 첨단 기술을 속속 도입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불가한 원거리 공격의 핵심 전력
검색창에 ‘현대전’이나 ‘무인기 전술’을 입력하면 소형 드론이 하늘을 날며 병력, 차량,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장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의 반복 노출로 인해 드론이 기존 포병 무기를 대체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군사 전문가는 이 같은 인식이 명백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드론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기존 포병 무기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것이다.
실전에서도 포병 무기의 효과는 지속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최근 한 전장에서는 개활지를 이동하던 병력 12명이 포착됐고, 이에 상대 군은 단 5발의 포탄으로 해당 병력을 전멸시켰다. 만약 이 작전에 드론을 투입했다면 병력 수만큼의 드론이 필요했고, 목표 지역까지 비행 및 조준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리스크가 따랐을 것이다. 반면 곡사포는 짧은 시간 안에 넓은 지역을 타격할 수 있었고, 전술적 효율성과 속도 면에서 더 우위였다.
포병 무기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다.
악천후나 전파 교란에 취약한 드론과 달리, 다양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운용 가능하다. 비용 면에서도 포탄 한 발은 드론 한 대보다 3분의 1 이상 저렴하다. 이러한 이유로 포병 무기는 여전히 현대전에서 ‘전쟁의 신’으로 불리며, 핵심 화력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화력과 생존성을 모두 높인 ‘자동화 자주포’
포병 무기의 중심에 서 있는 곡사포는 수백 년 전부터 사용돼 온 유서 깊은 무기로 20세기 초까지는 말이나 차량이 끌고 다니는 견인포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견인포 1대를 사용하려면 10명 내외의 군인이 필요하고 포를 정확하게 설치하고 발사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며 견인포를 운용하는 군인들이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차량의 도움 없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주포가 등장했으며 전차처럼 두꺼운 장갑을 둘러서 군인들을 지키고 궤도를 채용해서 험지에서의 이동성을 높이는 형태로 발전했다.
오늘날 자주포의 지상 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운용 인원을 줄이면서도 신속 정확하게, 더 먼 곳에 있는 적을 한층 강력한 화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독일의 ‘PzH2000’, 미국의 ‘M109A7’, 중국의 ‘PLZ05’ 등이 이러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자주포로 꼽힌다.
세계적 수준의 자주포가 갖추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자동화’다. 빠르게 사격하고 적의 대응 사격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해당 지점을 신속하게 벗어나는 ‘히트 앤 런(Hit and Run)’ 전술을 더욱 원활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자동 장전장치, 자동 항법장치 및 탄도 계산기 등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M109A6>
독일 <PzH2000>
발전을 거듭하는 국산 명품 자주포, K9
이런 가운데 ‘명품 자주포’라 불리며 세계 자주포 시장을 휩쓸고 있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의 ‘K9’이다. 1999년부터 실전 배치된 K9은 시제 차량 때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했다. 기본 사거리 40km로 당시의 자주포들을 압도한 K9은 사거리 연장용 탄환 사용 시 최대 사정거리가 60km까지 늘어난다. 초탄 3발을 15초 이내에 발사할 수 있으며, 분당 최대 6발까지 사격이 가능하다. 다른 자주포는 운용 인원이 직접 자주포를 조종해 포신의 위치, 각도 등을 맞춰야 했던 반면, K9은 전자식 사격 통제장치, 자동 장전장치를 갖추고 있어 제원을 입력하면 알아서 적을 조준한다.
2018년에 탄생한 1차 성능 개량형 ‘K9A1’에는 포신 보조 동력장치, 디지털 사격 통제 시스템, 조종수 열 영상 야간잠망경 등이 추가됐으며 GPS 기반의 자동 위치 확인 시스템이 도입돼 운용성이 한층 향상됐다. 2027년 전력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2차 성능 개량형 ‘K9A2’에는 완전 자동화 장전장치, 포탑 위 기관총의 원격사격통제체계(RCWS)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최대 발사 속도는 분당 6발에서 9발로 높아질 전망이며, 승무원 수도 기존 5명에서 3명으로 줄어든다. 경량화 및 이동 속도 향상을 위해 기존의 금속궤도 대신 고무궤도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한민국 <K9>
‘세계 최초의 유·무인복합 자주포’를 꿈꾸다
작년 10월 국내 최대 방위산업전시회에서 상세 내용이 최초 공개된 3차 개량형 ‘K9A3’의 키워드는 ‘무인 자동화’다. 다시 말해 병력이 거의 탑승하지 않고도 자율 기동하는 세계 최초의 유·무인복합(MUM-T) 자주포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자주포가 제대로 활약하려면 포탄이 원활하게 보급돼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자주포가 사용하는 155mm 포탄은 개당 무게가 40kg에 달해 보급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로봇형 탄약운반장갑차 ‘K10’을 개발해 이 같은 부담을 크게 줄였다. 나아가 포탄을 탄약창, 탄약보급소, 편성부대 순으로 이동시킬 때 AI를 적용한 로봇팔을 활용하는 자동화 포병 탄약 적재 시스템의 개념 연구도 이뤄지고 있어 대한민국 자주포 운용 시스템의 효율성은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대한민국 자주포 K9 국가별 주문 수량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K9 자주곡사포는 2000년~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시장에서 48%(572문)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
“
세계적 수준의 자주포들은 하나같이
자동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자동 장전과 항법, 탄도 계산까지 스스로 해내며,
쏘고 재빨리 이동하는 ‘히트 앤 런’ 전술을
완벽히 뒷받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