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January + February Vol. 194
국방과학 시네마

영화 <오펜하이머>로
풀어본 탄도미사일 김승환 박사

글. 무내미 편집실   사진. 박기현 작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오펜하이머>로 풀어본 탄도미사일 김승환 박사

영화 <오펜하이머> 속 과학자들은 가족에게도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서 비밀리에 무기를 개발하고, 그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 8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도 말할 수 없는 일을 35년간 묵묵히 해온 사람이 있다. 제24회 ‘올해의 ADD인 상’ 수상자인 김승환 박사는 우리나라 탄도미사일의 거의 모든 개발에 관여하면서도 그간 그 성과를 공개할 수 없었다.

Dr. Seung Hwan Kim

이 력

·

1991 국방과학연구소 입소

·

2016 1기술연구본부 유도조종기법 팀장

·

2018 제2유도무기체계단 2팀장

·

2021 미사일연구원 2체계단장

·

2022 미사일연구원 원장으로 연구개발 업무 총괄

·

2025 12월 제24회 ‘올해의 ADD인 상’ 수상



올해의 ADD인 상 탄도미사일 분야 김승환 박사
제24회 ‘올해의 ADD인 상’ 상패

무기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선택에서 시작된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가족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함께 있으면서도 그가 홀로 건너가야 할
생각의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일, 멈출 수 없는 사명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23년 작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로스앨러모스에서의 일상이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비밀 도시에서 수천 명의 과학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살았지만, 정작 무슨 연구를 하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는 남편이 무엇을 만드는지 알면서도 물을 수 없었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왜 늘 바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기를 만든다는 역설 속에서, 그들 가족은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나 철저히 고독했다.
지금 여기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영화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김승환 박사의 아내 최인자 씨는 밤낮도 연휴도 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익숙해져야 했다.
“‘또 미사일이야?’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물었어요.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다 하면 저까지 긴장이 되더라고요.”
김승환 박사는 35년간 우리나라 탄도미사일 개발의 핵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은 공개할 수도, 수출할 수도,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무게를 홀로 짊어졌듯, 그 역시 말할 수 없는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 왔다.
“이 업무는 공개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고요. 어디에서 말할 수도 없어요. 그래도 업무 만족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사실상 미사일 개발은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전쟁과 같아요. 하지만 미사일을 발사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개발합니다. 탄도미사일은 전쟁 억제력으로서 큰 역할을 할 테니까요.”
<오펜하이머>속 과학자들이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면, 김승환 박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미사일을 만든다. 쓰이지 않기를 바라며 만드는 무기, 그 역설적인 사명이 35년을 지탱하게 했다.
김승환 박사는 1991년에 입소했다. 마침 탄도미사일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해였다. 김승환 박사는 이 역사적 시작과 함께 기술연구본부에서 26년간 미사일의 ‘두뇌’에 해당하는 유도 제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목표물에 정확히 가기 위한 알고리즘, 여러 조건을 충족하면서 미사일을 보내는 업무였다. 김승환 박사는 방위력 개선 유공 금상을 세 번이나 받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혼자가 아니라 수백 명이 함께한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미사일은 종합예술이에요. 이공계에서도 다양한 전공자가 모여서 협업해야 하죠. 비행시험 일정이 잡히면 동료 모두가 여기에 올인해요.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고, 밤새도록 일하면서 아이디어를 내죠. 평소에도 머릿속에 그 생각만 하고요. 이런 열정이 우리의 능력이고, 실력이에요.”
이후 김승환 박사는 체계단으로 옮겨 팀장, 단장, 미사일연구원장까지 역임했다. 미사일연구원장을 맡은 김승환 박사는 2년 5개월의 임기 동안 특히 3축 체계를 발전시켰다. 3축 체계 중 첫 번째는 킬체인(Kill Chain)이다. 적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할 때 선제적으로 탐지하여 타격하는 조기 선제공격이다. 두 번째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Korea Air and Missile Defense)로 발사된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하고 추적해 요격하는 다층 미사일 방어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량응징보복(KMPR, Korean Massive Punishment & Retaliation)은 북한이 핵이나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경우 전쟁 지휘부와 핵심 시설을 압도적으로 타격해 응징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3축 체계의 핵심 타격 수단이 바로 탄도미사일이다.

* 자료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한우물만 파게 만든 미사일의 매력

이처럼 중요한 업무를 맡은 김승환 박사는 늘 개인적인 일보다 업무를 최우선순위에 뒀다. 명절에도 오랜만에 온 가족이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일 때문에 차를 돌리기 일쑤였고, 생일을 가족과 함께 보냈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아이들의 입학식, 졸업식, 입대일에도 아빠의 자리는 항상 비어 있었다. 최근 첫째 딸의 결혼식 전날까지도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세 시간을 자고 혼주석에 선 김승환 박사는 목이 메어 성혼 선언문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느새 이렇게 자랐구나’ 싶어서 대견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지만 오히려 최인자 씨는 남편에 대해서 서운함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남편이 지금까지 한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저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긴 했지만 그렇게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진 날이면 남편은 꼭 전화를 해서 ‘오늘 못 가봐서 미안하다’, ‘오늘 괜찮았냐’라며 위로의 말을 해주곤 했어요. 그러면 마음이 풀리더라고요.”
특히 최인자 씨는 35년간 미사일이라는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다져온 남편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이는 부부가 아이들에게 몸소 가르쳐주고 싶었던 좌우명이기도 했다. 김승환 박사는 평소 좌우명이 ‘한 우물을 파라’라면서 말을 잇는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 역시 한 분야를 계속해 왔어요. 솔직히 말하면 미사일 분야였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다른 업무였으면 싫증을 냈을지 모르는데 북한이 계속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니까 경쟁심리도 생겼고요. 엔지니어로서 미사일에 대한 호기심도 자극받았죠.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시험에 성공하면 그동안 힘들었던 게 눈 녹듯이 사라져요.”
김승환 박사는 35년간 수없는 비행시험을 해왔지만 아직도 비행시험을 하기 전날이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시험 당일에는 손에 땀을 쥐며 결과를 기다린다. 비행시험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작은 부품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실패할 수 있고, 그 원인을 찾는 데만 해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실패를 겪으면서 보완해 가며 신뢰도를 높이는 것 역시 미사일 연구의 매력이다.


중요한 집안 행사가 있었던 날이면
남편은 꼭 전화를 해서
‘오늘 못 가봐서 미안하다’,
‘오늘 괜찮았냐’라며
위로의 말을 해주곤 했어요.

평생 일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일

미사일연구원장 시절 1,000명의 조직을 이끌면서 그가 가장 중시한 건 ‘공정’이었다. 여기서 공정은 나눠 먹기가 아니라 잘한 만큼 보상한다는 의미다.
원칙을 세우고는 이를 허물지 않았다. 그래야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소통에도 공을 들이며 시간이 날 때마다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대하던 후배들 역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김승환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건배사는 ‘소화제’로,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승환 박사는 현재 고충처리위원장을 맡아 후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 김승환 박사는 소원 모두가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요즘 소원 모두가 각자 고립되어서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해요. 그런데 이런 문제를 선배들과 소통하면서 풀 수 있거든요. 갈등이 있다고 해도 소통하면서 내 생각과 상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김승환 박사가 요즘 안타까워하는 현실이 또 하나 있다. 10년 전만 해도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직장 선호도에서 최고 수준이었는데 지역이나 처우 문제로 선호도가 밀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미사일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절대 아니에요. 같이 일했던 선배,
동료, 후배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상을 받으면서도 미안했어요.

“나라를 지키는 연구소인 국방과학연구소의 일이라니 얼마나 멋있나요? ADD가 하는 일은 일평생 자기 지식과 몸을 바쳐 해볼 만해요. 나라를 지킨다는 건, 작게 보면 우리 가족을 지키는 거예요. 전쟁이 나서 나라가 없으면 우리 가족이 있을까요? 처우는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그러니 ADD에 와서 평생 일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탄도미사일은 공개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는 분야다.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다. 그래서 김승환 박사는 이번 수상이 숨어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미사일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절대 아니에요. 같이 일했던 선배, 동료, 후배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상을 받으면서도 미안했어요. 그래도 함께 일한 이들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올해의 ADD인 상’ 수상 소식을 듣고 김승환 박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최인자 씨는 이 사실을 알고 남편보다 더 뿌듯해했다.
“남편은 일생 미사일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는데, 그걸 전문가들, 그리고 동료들이 인정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성에서도 인성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더라고요.”
오펜하이머는 핵무기를 만들고 평생 그 무게를 짊어졌다. 김승환 박사 역시 전쟁을 막기 위해 미사일을 만들며 35년을 보냈다. 두 과학자가 만든 무기는 다르지만 ‘쓰이지 않기를 바라며 만드는 무기’라는 점에서 그 무게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