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수문장’을 벼리다 유세현 궁시장
글. 편집실 사진. 고평주 작가
글. 편집실 사진. 고평주 작가
활과 화살은 근대 이전까지 대륙의 인해전술과 섬나라의 조총으로부터 조상들을 지켜준 ‘한반도의 수문장’과 같은 무기이자 옛사람들의 인성을 가다듬고 자아를 완성하는 방편이었다. 유세현 궁시장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통 화살을 복원하고 벼림으로써 그 안에 담긴 한민족의 굳센 기상과 고결한 마음가짐을 현대인에게 전수한다.
우리 조상들은 유난히 활쏘기를 사랑했다. 선비들은 어릴 적부터 활쏘기로 심신을 단련했고, 왕은 신하들과의 유대 강화를 위해 활과 화살을 들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한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렀는데, 한나라의 경학자 허신이 1만여 자의 한자를 종합적으로 해설한 저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이(夷)는 활과 관련 있는 문자라고 한다. 우리의 활쏘기 문화가 깊은 내력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세현 궁시장이 “동북아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이해되는 선택”이라며 말을 이었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영토와 인구의 대국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마술, 창술 등이 발달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조총이라고도 불리는 화승총을 일찍이 들여오고 전법을 개발해서 막강한 화력을 갖췄는데요, 우리나라는 이에 맞설 무기로 활과 화살을 택했습니다. 조총보다 사거리가 월등하게 긴 데다가 자리만 잘 잡으면 궁사 한 명이 돌격하는 적 수십 명을 차례로 상대할 수 있었으니까요. 요컨대 활과 화살은 한민족의 필수적인 생존 무기였으며, 조상들은 이를 발전시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활 무기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실학자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왜적들은 중국의 창법, 조선의 편전(‘애기살’이라고도 불리는 조선시대 화살), 일본의 조총이 천하제일이라고 항상 말했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죠.”
궁시장(弓矢匠)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세부적으로는 활을 만드는 궁장(弓匠)과 화살을 만드는 시장(矢匠)으로 나뉜다. 유세현 궁시장은 후자에 속하는 ‘화살 장인’으로, 1986년부터 지금껏 화살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다. 기록이 남아 있는 증조할아버지부터 따지면 벌써 4대째 화살을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 활쏘기 문화에 각별한 애정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전통 화살의 복원 및 실험과 관련된 유의미한 성과를 속속 만들어왔다.
유세현
국가무형유산 궁시장
유세현 궁시장은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이후 우리나라의 다양한 전통 화살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조선 전기의 연습용 화살인 ‘박두(撲頭)’를 발견해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조선의 최종 병기’라는 별칭에 걸맞게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도 대활약한 애기살 ‘편전(片箭)’은 유물만 존재했을 뿐, 이 짧은 화살을 어떻게 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육군박물관에서 일종의 총열 역할을 하는 유물 ‘통아(桶兒)’를 발견하고 수차례 실험한 끝에 정확한 발사 방법을 알아냈다.
특유의 소리를 내어 전군에게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지휘관의 화살 ‘효시(嚆矢)’도 복원하는데 애를 먹었다. 남겨진 유물의 모양을 본떠서 소리가 나는 부위인 명적(鳴鏑)을 만들었지만, 그 원리를 파악하고 시제품을 만드는 데는 기나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낸 끝에 비로소 만족할 만한 복원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무과 시험에 두루 사용했지만 전해지는 유물이 없었던 ‘육량전(六兩箭)’을 복원한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육량전은 화살촉 무게만 여섯 냥(약 225g)에 이르는 독특한 화살인데요,일본의 한 궁술책의 부록에서 육량전의 제원과 모양새를 발견하고 복원했습니다. 이 화살의 독특한 점은 화살이 곧게 날아가도록 돕는 깃이 달려 있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이에 화살 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만들어서 발사 시험을 한 결과, 무거운 화살촉 때문에 성능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깃이 화살의 필수 요소라고 여겼기에, 궁시장으로서 충격적인 결과였는데요, 화살의 세계에는 끝이 없다는 걸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유세현 궁시장은 아버지인 고(故) 유영기 궁시장과 함께 왕과 지휘관의 영을 하달할 때 쓴 ‘신전(信箭)’과 ‘영전(令箭)’, 군율을 어긴 군사를 처벌할 때 썼던 ‘관이전(貫耳箭)’, 화살촉이 둥글고 날이 없는 연습용 화살 ‘철전(鐵箭)’ 등을 복원하며 우리나라 화살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유세현 궁시장이 제작한 전통화살액자
유세현 궁시장의 화살 제작 역사는 어느덧 41년 차에 접어들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일손을 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평생을 화살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외길을 걸었으니 지겨울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화살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화살의 몸체가 될 대나무를 선별하는 일부터 깃을 붙이고 최종 졸보기(화살의 모양을 다듬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하루 평균 3개 내외의 화살밖에 못 만들지만 온 힘을 다해 혼을 불어넣는 만큼 가장 질 좋은 화살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화살로 점철된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국방과학연구소의 무기 체계를 바라볼 때도 화살과 연관 짓게 된다. 구룡, 천무 같은 다연장로켓포를 보고 있자면 아버지와 함께 세운 국내 유일의 활·화살 전문 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 한편에 서 있는 다연장 화차 ‘신기전(神機箭)’이 떠오른다. 현무 미사일을 보면 임진왜란 때 왜군의 함선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대형 화살 ‘대장군전(大將軍箭)’이 연상된다. “세계 최고인 우리 활과 화살의 계보를 잇는 최상급 무기 체계를 속속 탄생시키는 국방과학연구소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밝힌 유세현 궁시장은 “근대 이전의 주력 무기인 활과 화살로 한반도를 지켰던 수많은 궁시장의 뒤를 잇는다는 자긍심으로 앞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나라를 굳건하게 지킬 무기 체계 개발에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라며 연구원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지금까지 전통 화살 복원에 주력해 온 유세현 궁시장은 대중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미래를 구상 중이다.
화살 제작을 넘어, 전통 활쏘기 문화의 대중화에 힘을 보탤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그렇다고 해서 전통 형태 그대로를 고집할 생각은 없다”라고 첨언한 그는 “많은 분이 전통 활쏘기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그날을 고대한다”라며 웃었다. ‘활쏘기 문화가 녹아든 대한민국’을 향한 희망과 기대가 담긴, 장인 특유의 웅숭깊은 미소였다.
Profile.
유세현 궁시장 41년째 화살 제작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시장(矢匠). 박두, 효시, 신전, 철전, 관이전 등 다양한 전통 화살 복원에 앞장서 왔으며, ‘조선의 최종 병기’인 편전의 발사법을 알아냈다. 국내 유일의 활·화살 전문 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