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RUM)이 빚어낸
승리와 위로의 기록
글. 편집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주간동아, 서울경제
글. 편집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주간동아, 서울경제
럼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전쟁터의 필수 보급품이자 의약품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병사들의 공포를 달래고 생존을 도운 고귀한 액체, 럼. 처절한 사투 속에서 피어난 위안과 갈등의 기록을 들여다봅니다.
전쟁의 비정함 속에서 알코올은 병사들이 극한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견디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럼은 영국 해군이 자메이카를 점령한 1655년 이후 공식 배급주가 되어 수 세기 동안 전 세계 전장을 누볐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증류주인 럼은 상처를 소독하는 살균제이자 수술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로 쓰였다. 물마저 썩는 오랜 기간의 항해에도 살균 보존이 가능한 기적의 액체라 할 만하다. 때로는 경제적 권력 투쟁의 도구로, 때로는 타도해야 할 '악마'로 취급받은 술. 한 잔의 럼에 깃든 역사적 장면, 결정적 순간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산 브랜디를 대체할 저렴한 대안을 모색하던 영국 해군은 럼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전장에 럼을 갓 보급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독한 술을 그대로 마셔 만취하는 병사가 많았기에, 에드워드 버넌 제독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1740년, 럼에 물을 섞어 배급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이 희석주의 이름은 ‘그로그’다. 버넌 제독이 즐겨 입던 그로그럼 소재 코트에서 온 별명인 ‘올드 그로그’가 명칭의 유래다. 여기에 병사들이 사비로 설탕과 라임을 추가해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의도치 않게 괴혈병을 예방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후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의 시신을 주통에 담아 보존한 일을 계기로 해군 사이에서는 럼을 ‘넬슨의 피’라 부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진흙탕 참호 속에서 럼은 음료라기보다 약에 가까웠다. 영국 연합군은 공식 보급 창고를 뜻하는 ‘SRD(Supply Reserve Depot)’가 적힌 도자기 항아리에 담긴 럼을 받았는데, 병사들은 이를 ‘곧 바닥난다(Soon Runs Dry)’는 식의 농담으로 풀이하며 애착을 보였다. 극심한 추위와 습기 속에서 새벽과 황혼에 지급되는 럼 한 잔은 체온을 유지하고 무너지는 사기를 떠받치는 핵심 도구였다. 특히 돌격 직전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마시는 술은 ‘액체로 된 용기’였으며, 의학적 처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고통을 잊게 하는 천연 마취제였다.
럼은 배급품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정치적 갈등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80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서는 화폐 대용으로 유통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고, 이를 규제하려던 윌리엄 블라이 총독에 맞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럼 반란'은 그 사회적 위력을 잘 보여 준다. 한편, 본국에서는 배급을 중단하라는 절제 운동이 거세게 일었으나 참호 속 병사들은 “럼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졌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수백 년간 이어진 해군의 럼 배급 전통은 1970년 7월 31일 블랙 토트 데이(Black Tot Day)*를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병사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술통을 바다에 수장하며 한 시대의 종언을 애도했다. 공식 배급주로서 럼의 역사는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져 갔으나,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병사에게 도착한 1인분의 달콤한 위로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모히토
(Mojito)
럼을 기주로 한 대표적 클래식 칵테일
화이트 럼 + 라임 + 민트 + 설탕 + 탄산수
마이타이
(Mai Tai)
미국 티키* 바를 통해 대중화된 대표작
럼 + 오렌지 퀴라소 + 오르지앗 시럽 + 라임 주스
피냐 콜라다
(Pina Colada)
트로피컬 칵테일의 대명사
럼 + 코코넛 + 파인애플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Long Island Iced Tea)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유래한 칵테일
화이트 럼 + 보드카 + 진 + 테킬라 +
레몬즙 + 시럽 + 콜라
토트(Tot): 럼 배급을 의미한다. 이 제도를 처음 시행했을 때는 매일 정오에 도수 54.5도에 달하는 럼주를 무려 0.5파인트(약 280ml, 종이컵 한 컵 반)씩 모든 선원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티키 문화(Tiki Culture): 1930~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남태평양·폴리네시아풍의 이국적인 휴양지 스타일 문화를 의미한다. 대나무, 열대식물, 그늘막, 폴리네시아 신화 속 신을 조각한 토템 등으로 장식한 ‘티키 바’에 가면 과일과 꽃, 민트 등으로 장식한 화려하고 달콤한 럼 베이스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