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물빛과 풀빛을 따라 걷는 여름
서귀포 물길, 뭍길 기행
글. 강나은
사진. 박기현, 한국관광공사, shutterstock
글. 강나은
사진. 박기현, 한국관광공사, shutterstock
한여름, 서귀포가 오래도록 품어온 시원한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 바다를 품은 오름, 수억 년 전 용암이 바다 위 조각한 돌기둥을 따라 물빛과 나뭇빛을 번갈아 눈에 담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저만치 물러난다.
서귀포 앞바다는 사시사철 푸른빛을 자랑하지만,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여름이 되면 그 빛깔이 유독 짙고 깊어진다. 한라산 남쪽 사면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린 청량한 물줄기는 크고 작은 폭포와 계곡을 만들며 종착지인 바다로 향하고, 그 물길 곁으로는 초록빛 오름들이 나지막이 솟아올라 또 다른 평화로운 길을 낸다. 오랜 세월 바다를 마주한 채 단단하게 굳은 용암은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저마다 다른 표정의 주상절리와 절벽을 빚어냈다. 거친 암석과 푸른 바다, 그리고 싱그러운 숲이 어우러진 서귀포의 여름은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가장 경이로운 풍경화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 신비롭다. 상류 솜반내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은 계곡을 타고 흘러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쏟아지는 물줄기와 물보라, 시원한 물소리, 연못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한여름 무더위를 씻어낸다. 거센 물줄기가 땅속 깊이 박힐 듯하다가도 이내 잔잔한 연못으로 스며드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폭포 한편엔 상대적으로 물줄기가 약한 작은 폭포가 서로 다른 리듬으로 나란히 흘러내린다. 선인들은 이 물줄기 반대편에 과녁을 세우고 활쏘기 시합을 즐겼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여름이면 많은 이가 이곳에 모여드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폭포 아래는 난대림의 초록으로 가득하다. 여름 햇살을 가리는 나무 그늘 덕에 숲으로 들어서면 금세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촘촘한 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바닥에 자잘한 무늬를 그려놓는데, 마치 어른거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잔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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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천지연 난대림
난대림이란 연평균 기온이 14℃ 안팎인 온대와 아열대 사이 지역에서 발달하는 상록활엽수림을 뜻한다. 해양성 기후와 다습한 환경 덕분에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제주만의 독특한 식생 경관을 이룬다. 주로 구실잣밤나무, 담팔수, 후박나무 같은 상록활엽수가 계곡과 저지대를 따라 군락을 형성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천지연 난대림은 여러 종류의 고사리와 희귀식물 솔잎난이 자라 학술적 가치가 높다.
천지연 서쪽, 중문·대포 해안 언저리에 다다르자 베릿내오름 들머리가 나타난다. 나무 덱 산책로를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르니 한편엔 바다가, 다른 한편엔 풀과 나무가 무성한 숲이 펼쳐진다. 청아한 새소리를 따라 걷는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파르지 않아 누구나 산책하기 좋지만 갈림길이 여럿이라 이정표를 살펴 가는 편이 좋다. 15분 남짓 등반하면 오름 정상에 닿는다. 두 그루 소나무가 잘 왔다며 오가는 이들을 반기는 듯하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건물과 요트 선착장, 저 멀리 짙푸른 바다가 한데 이루는 장면이 눈부시다. 하산길도 즐겁다. 덩굴이 나무를 감싸고 오르는 모습도, 내리막에서 마주치는 바다 풍경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름을 오르내리는 것이 곧 삶을 마주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연히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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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본체 화산인 한라산의 사면이나 주변부에서 별도의 분화구를 통해 소규모 분출이 일어나 형성된, 크고 작은 화산체를 가리키는 말. 제주어로 ‘산’ 또는 ‘봉우리’를 의미하며 제주도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현무암질 마그마로 이루어진 원뿔 모양의 봉우리, 움푹 팬 분화구를 함께 지닌 경우가 많다. 오름 정상부의 분화구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을 ‘굼부리’라 부르기도 한다.
이제 바다로 간다. 검은 현무암과 푸른 바다가 절묘한 경관을 자아내는 중문·대포 해안 주상절리대는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다. 전망대에 올라 유독 파도 소리가 크게 울리는 쪽으로 다가서자 곧게 뻗은 육각 돌기둥인 주상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 곳곳에 펼쳐진 기암괴석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 딛고 선 이 자리를 수만 개의 돌기둥이 켜켜이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득한 시간의 무게가 발끝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주상절리는 약 25만 년 전, 녹하지악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용암이 지표면에서 서서히 식으며 수축한 흔적이다.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깎아낸 정교한 조각품인 셈이다. 밀려왔다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노라면 일상의 소란스러움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거대한 자연이 주는 깊은 평온함이 차오른다. 낯설어서 더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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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
절리(節理)란 암석에 생긴 갈라진 면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다.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드는 수축 작용으로 수직 방향 균열이 생겨 다각형 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암석 구조가 바로 주상절리다. 제주도는 신생대에 형성된 화산섬으로, 주로 현무암질 용암으로 이루어진다. 중문·대포해안, 천지연, 안덕계곡, 산방산 등 남쪽 해안을 따라 뚜렷한 육각형 주상절리가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