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엔진,
강하고 튼튼한 우리의 심장
항공엔진 분야 김진형 단장
글. 강나은 사진. 박기현 일러스트. 챗GPT
글. 강나은 사진. 박기현 일러스트. 챗GPT
1,000℃의 화염을 견디는 터빈 블레이드처럼 가혹한 기술 통제의 벽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사람, 국방과학연구소 항공엔진 분야 김진형 단장을 소개합니다. 1996년 해성 유도탄 체계개발에서 시작해 2026년 무인기용 장수명 항공엔진, 그리고 2040년대 첨단 항공엔진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독자적인 기술 주권을 확보하며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미래로 나아가는 그의 발자취를 살펴봅니다.
1 여정의 시작
연소기 속 1,000℃가 넘는 화염을 견디며 분당 3만 회 넘게 회전하는 터빈 블레이드는 극도의 고온, 원심력과 싸운다. 터빈 블레이드 같이 손바닥만 한 금속 부품조차 쉽게 들여올 수 없을 만큼 항공엔진은 기술 통제가 가혹한 분야다. 국방과학연구소는 1990년대 초 함대함 유도탄 ‘해성’의 터보제트엔진으로 단수명 기술을 다진 뒤, 2019년 수천 시간을 견디는 장수명 엔진에 도전장을 냈다. 김진형 단장은 국산 항공엔진개발을 최전선에서 지휘해 온 주역이다. 1996년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소한 그는 해성 유도탄 체계개발을 담당할 당시, 소수 인원으로 국내 첫 순항유도무기 엔진에 사활을 걸던 개발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미국에서 만들어 전쟁에 투입했던 순항유도무기 엔진을 과연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싶었죠.” 해성에 실린 터보제트엔진은 국내 최초의 항공엔진이었다. 1992년 국방과학연구소와 여러 협력업체가 첫 삽을 떴고, 이후 터보팬 단수명엔진으로 기술이 이어졌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항공엔진 개발 역사가 곧 대한민국 항공엔진 개발의 역사였다.
선진 기술을 추격하는 과정에는 눈물겨운 집념이 있었다. 2000년대 초, 우리보다 앞서 있던 인도가 엔진 시험설비를 구축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임진식 부장과 협력업체 직원은 무작정 전화부터 걸었다. 공개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이들은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가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시험장에 도착했다. 시험장 앞에는 총을 든 경비가 서 있었다. “그곳에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앞에 와 있으니 조금만 보여달라’라고 통사정을 했죠. 담당자가 이 사람들 정말 독하다 싶었던 모양인지, 결국 설비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간절함이 한국 항공엔진의 역사를 만든 겁니다.”
2 도약의 시간
유도무기용 단수명 엔진과 항공기용 장수명 엔진은 차원이 다르다. 한 번 발사하면 임무를 다하는 엔진과 수천 시간 지속적으로 하늘에 떠 있어야 하는 엔진의 기술 수준이 같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항공기용 장수명 엔진에는 조종사의 목숨이 달렸다. “유도무기는 무인 체계라 실패해도 인명 피해가 없지만, 엔진은 항공기의 심장입니다. 혈액을 순환시키듯 동력과 전력을 창출하죠. 이 동력이 꺼지면 기체는 추락합니다.”
이 때문에 장수명 엔진에는 엄격한 감항인증이 요구된다. 소재 하나까지 결함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지만, 국내에는 전례가 없어 전용 검증 표준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이 험난한 과제에 도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해외 도입 방식은 막대한 유지보수 부담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실제 운용 비용 중 구동계 정비 비중이 30%를 상회한다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자주안보라는 핵심 과제도 걸려 있다. “주요국은 검증된 우방국에만 독자 기술 수출을 허용합니다. 정세 변화에 따라 부품 조달이 차단될 위험이 상존하죠. 더욱이 국산 무인기에 해외산 동력원을 탑재하면 수출 통제에 막혀 해외 판로 개척도 제약을 받습니다. 진정한 자립은 외세의 간섭 없이 독자 제조하고, 자유롭게 수출할 주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3 한계를 넘다
엔진의 작동 효율은 얼마나 높은 압력과 온도를 구현하느냐에 달렸다. 이때 연소기와 터빈으로 이루어진 고온부는 극한의 온도를 직접적으로 견뎌야 하는 부위를 일컫는다. 연소기 라이너를 비롯해 터빈베인과 블레이드는 1,000℃를 웃도는 열기에 노출된다. 일반적으로 금속은 이 온도를 넘어서면 내구성이 급격히 떨어지며 변형되고 녹아내린다. “연소기는 별도의 동적 하중 없이 고온·고압의 정적인 상태에 노출됩니다. 반면 터빈 블레이드는 분당 3만 회(rpm) 이상으로 고속 회전하며 상당한 원심력을 동시에 견뎌야 합니다. 엔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복합적인 극한 환경에 놓이는 부품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3가지 핵심 기술을 동원한다. 금속 자체의 내열 한계를 끌어올리는 초내열합금 단결정 소재, 부품 내부로 냉각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술, 그리고 표면에 세라믹을 입혀 열전달을 차단하는 열차폐 코팅으로, 모두 해외 구매가 엄격히 제한된 첨단기술이다. 가장 최근 거둔 성과는 열차폐 세라믹 코팅의 기술 자립이다. 선진국이 제조 공정은 물론 관련 장비와 완제품까지 철저히 통제해 온 핵심 영역이었으나, 2021년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아래 6개 유관 기관과 민군협력과제로 착수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코팅 기술에 앞서 준양산급 코팅 장비를 선제적으로 국산화한 점이 결정적이었다. “독자적인 장비를 확보한 덕분에 다양한 공정 변수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최적의 조건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개발 초기 실패를 호언장담했던 해외 전문가들조차 현재는 뛰어난 완성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입니다.”
4 성공의 희열
2019년 5,500lbf급 장수명 터보팬 엔진 착수를 시작으로, 현재 항공엔진 분야에서는 10,000lbf급 터보팬 엔진과 중고도 정찰용 무인기용 1,400마력급 터보프롭 엔진까지 총 3가지 동력원을 동시에 개발 중이다. 그리고 마침내 초도 시제품에 연료가 주입되고 점화가 이루어졌다.
“설계도나 연구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엔진이 실물로 구현되어 지상 시험대에서 첫 시동을 걸던 순간이었습니다. 작동 사이클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체가 실제로 호흡을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열 달 동안 뱃속에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첫 울음을 터뜨릴 때의 감격과 비견할 만했죠.”
시험장에 환호가 울려 퍼졌고, 연구원들은 서로를 껴안았다. 이 공개 현장에서 누군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지나온 고초와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엔지니어에게 첫 시동은 완성품의 탄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험과 개선, 재제작이 반복되는 장기전의 시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얻었을 때 느끼는 환희와 더불어 겪게 될 양육의 고단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심정과 같습니다.”
5 미래로 한걸음
1996년부터 27년간 유도탄체계를 연구해 온 김진형 단장은 2023년 엔진 담당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세 가지 동력원을 동시 개발하는 이 부서의 연구 인력은 불과 40여 명이다. 안타깝게도 이 분야의 국내 산·학·연 전체 연구진을 합쳐도 채 500명이 안 된다. 단일 기업에 2,000~3,000명이 포진한 글로벌 선진 그룹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열악한 조건에도 로드맵은 차근차근 이행되고 있다. 2030년대 초반 무인기용 동력원 완성을 시작으로, 2028년 착수할 16,000lbf급 첨단 항공엔진을 2040년대 초반까지 개발하는 명확한 목표가 서 있다. KF-21의 F414 엔진 기술을 기준으로 선도국과의 격차는 40~50년에 달하지만 연구진은 굴하지 않는다.
“최종 지향점은 6세대 전투기용 동력원 확보입니다. 디지털 트윈과 가변 사이클 등 첨단 기술 기반을 단단히 다진다면 40년의 시차를 단숨에 줄일 수 있습니다.”
김 박사는 함께 헌신해 온 항공엔진 분야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독자들의 성원을 당부했다.
“독자 엔진이 영공을 수호할 때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 산업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가슴이 뛰고 있다면 우리 부서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함께 대한민국의 심장을 뛰게 만듭시다.”
항공엔진의 핵심 부품, 터빈 블레이드를 두 손에 올린 모습
국방과학연구소와 김진형 단장의 항공엔진 개척 발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