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서 타오른 불꽃,
테킬라
글. 편집실 출처. 한국경제, 한국지식재산연구원, KOTRA
글. 편집실 출처. 한국경제, 한국지식재산연구원, KOTRA
포화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탄생한 술, 테킬라를 소개합니다. 참호 속에서 들이켠 한잔의 술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민족의 자부심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는지, 전란의 역사 속 테킬라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블랑코 숙성 없이 병입해 아가베 본연의 풍미가 살아 있는 투명한 원액. 호벤 블랑코에 캐러멜 등을 첨가하거나 숙성 원액을 섞은 황금빛 등급. 레포사도 오크통에서 2개월에서 12개월간 숙성해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감도는 등급. 아녜호 350L 이하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장기 숙성한 깊은 호박색의 고급 등급. 엑스트라 아녜호 3년 이상 숙성해 위스키에 비견되는 최상위 등급.
전쟁은 때로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독특한 주류 문화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 테킬라와 메스칼 역시 피비린내 나는 참화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와 정체성을 다진 술이다. 메스칼은 용설란을 원료로 하는 독주인데, 테킬라는 할리스코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테킬라에서 푸른 용설란만을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메스칼만을 지칭한다. 이들은 국경지대의 충돌, 열강의 침략, 그리고 혁명군의 선전전 속에서 음료를 넘어 주권 수호와 저항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아스테카 왕국에서는 용설란 수액을 자연 발효시킨 탁주 풀케(Pulque)를 즐겼다. 제사장의 종교의식이나 전사의 상처를 치료하는 용도로만 음용하는 신성한 술이었다.
1521년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테카 왕국을 함락하면서 이 술은 예기치 못한 변화를 마주한다. 본국에서 가져온 포도주가 떨어지자 에스파냐 병사들은 갈증을 달랠 독주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16세기 중반 구리 증류기를 들여와 아가베즙을 끓여 이슬을 받아낸다. 이것이 바로 테킬라의 원류인 메스칼의 기원이다.
에스파냐 왕실은 식민지 제조업을 누르고 본국 주류 무역을 보호하고자 1785년 토착 독주의 생산을 금지했다. 주조 업자들은 단속을 피하려 아가베를 땅속 밀폐된 구덩이에 묻은 채 구웠는데, 이는 메스칼 특유의 스모키한 향이 배도록 하는 지하 훈연 공정의 시초다. 금지령이 풀린 1795년, 주조 업자 호세마리아 과달루페 데 쿠에르보는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4세에게 최초로 증류주 판매 허가를 받는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킬라 브랜드 ‘호세 쿠에르보’의 첫걸음이다.
테킬라가 세계적인 위상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19세기 영토 확장을 둘러싼 전쟁이 있다. 1836년 텍사스 혁명 당시 알라모 전투에 투입된 미국 의용군들은 멕시코 병사들이 지참한 용설란 술의 풍미를 처음 경험한다. 10년 뒤 발발한 미국-멕시코 전쟁 때도 미군 장병들은 참혹한 시가전의 공포와 통증을 잊고자 리오그란데강 너머에서 들어온 독주를 들이켰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 기존 독주 유통망이 완전히 망가지자 국경지대 상인들은 메스칼을 대량으로 수입하기 시작한다. 당시 술을 담을 용기가 부족했던 주조 업자들은 미군 캠프 주변에 버려진 빈 위스키 오크통을 수거해 용액을 채워 수송했다. 이 과정에서 무색투명했던 원액이 오크통 목재와 결합하며 황금빛으로 물들고, 거친 맛이 부드럽게 순화되면서 가히 진화라 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다. 오크통 숙성 공법은 전쟁터의 폐기물을 재활용한 임시변통의 지혜가 선사한 역사적 선물이었다.
1862년 푸에블라 전투에서 멕시코 농민 의용군은 당대 최정예 프랑스군을 격퇴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참호 잔해 위에서 메스칼 잔을 들고 외친 승리의 함성은 프랑스의 남부 연합 지원을 저지해 미국 남북전쟁의 향방까지 바꾸었으며, 오늘날 테킬라 축제 ‘싱코 데 마요’의 기원이 되었다.
1910년 멕시코 혁명기에는 테킬라가 민족 저항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멕시코 민중은 외세의 위스키와 와인에 맞서 자국의 술을 마시며 독립심을 고취시켰다. 이 과정에서 민중가요 ‘랑체라’와 미디어를 통해 혁명 사령관 판초 비야의 강인한 이미지와 테킬라가 결합했고, 테킬라는 강대한 외세에 맞서는 주권 수호의 아이콘으로 승화한다.
대중문화 속 테킬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시한부 삶을 마주한 두 사내는 병실에서 테킬라를 마시며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결심한다. 그런가 하면 배우 조지 클루니가 설립한 테킬라 브랜드 ‘카사미고스(Casamigos)’의 대성공 이후 켄들 제너, 드웨인 존슨 등 수많은 글로벌 명사가 자신만의 테킬라 브랜드를 선보이며 프리미엄 주류 시장을 이끌고 있다.
호세 쿠에르보(Jose Cuervo)
1795년 호세마리아 과달루페 데 쿠에르보가 상업 증류 면허를 받으며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1812년 설립한 라 로헤냐 증류소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테킬라 양조장이다.
원액 그대로 홀짝이기
멕시코인들은 최고급 테킬라를 한 번에 털어 넣지 않는다. 전용 잔에 원액을 담아 와인처럼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홀짝인다.
멕시코 국민 칵테일, 팔로마(Paloma)
멕시코 현지에서 마가리타보다 자주 마시는 국민 칵테일이다. 테킬라에 자몽 소다(혹은 생자몽즙과 탄산수), 라임즙을 섞고 잔 테두리에 소금을 묻혀 청량하고 시원하게 즐긴다.
라임, 소금 그리고 반데라(Bandera)
상큼한 라임을 먼저 살짝 베어 물어 입안을 여운으로 채운 뒤 테킬라를 마시고, 손가락 끝으로 소금을 살짝 찍어 먹는 것이 현지식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멕시코 국기 색을 따온 ‘반데라(Bandera)’ 방식도 유명하다. 라임 즙(초록), 테킬라(흰색), 매콤한 토마토 음료 산그리타(빨간색)를 세 잔에 나누어 담아 번갈아 마시는 전통 방식이다.
숙성 테킬라에는 얼음 금지
풍미 깊은 숙성 테킬라(레포사도, 아녜호)에는 얼음을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온도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아가베 특유의 풍부한 향과 오크통의 은은한 바닐라 향이 묻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