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September + October Vol. 198
SPOTLIGHT

산과 바다를 건너
내 안의 두려움을 넘다

엄홍길

글. 하경헌(스포츠경향 기자)  
사진. 박기현, 엄홍길휴먼재단

산과 바다를 건너
내 안의 두려움을 넘다

엄홍길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엄홍길 대장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는 도전의 원동력은 철저한 대비와 강인한 정신력입니다. UDT 시절부터 고산 등반, 네팔 교육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이 시대 수많은 도전자에게 전하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해발 200m 높이의 야트막한 뒷산이라도 산을 올라본 사람은 안다. 등산이 얼마나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행위인지. 정상에서의 성취감과 내려올 때의 가뿐함이 등산의 열매라지만, 많은 이가 기억하는 것은 등정 과정의 어려움이다. 등산 인구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통계상 현상 유지에 그치는 이유가 바로 그 난도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스스로를 여전히 ‘대장’으로 칭해 달라 부탁한 산악인 엄홍길은 등산의 신성한 의미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1988년 해발 8,850m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를 모두 올랐다. 그리고 2004년 알룽캉(8,505m)과 2007년 로체샤르(8,382m)를 오르며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히말라야 16좌 완등에서 네팔을 향한 나눔으로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산이 잠시 정상의 자리를 ‘허락’해준 것이라 믿는 그는, 16좌 완등 이후 네팔에 학교를 세우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엄홍길휴먼재단’을 이끌고 있다. 안타깝게도 인터뷰 직전, 히말라야에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빙하와 암벽이 무너지며 히말라야 고산 호수가 붕괴해 5,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 대홍수였다.
“가장 먼저 물길이 들이쳤던 지룽 검문소를 불과 두 달 전에 다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사고지역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당시 검문소 시설을 보고도 어떻게 이런 협곡에 시설을 만들었는지 의아하고 놀랐는데, 그 위험이 결국 큰 사고가 됐습니다. 인근 카일라스산이 티베트나 힌두교를 믿는 인도, 네팔 사람들에게는 모두 성스러운 산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저희 재단 역시도 현지 인력이 있어 행정적인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휴대전화에는 네팔 현지 상황과 심경을 묻는 연락이 쇄도했다. 엄홍길 대장에게 네팔은 두 번째 고향이다. 16좌를 함께 오른 터전이자, 히말라야 아래에서 삶을 일궈온 이들이 있는 곳이기에 그들을 돕는 일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2007년 16좌 등반을 마쳤을 때, 히말라야에서 받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극한의 상황마다 ‘생존하여 돌아간다면 이 은혜를 갚으며 봉사하겠다’고 기도했거든요. 완등 후에도 산에 먼저 잠든 동료들을 추모하고, 산골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바꾸기 위해 계속 네팔을 찾았습니다. 2008년 재단을 설립하고 2010년 1호 학교를 시작으로 현재 20여 개 학교를 지었습니다. 병원, 동자 스님 기숙사, 전자도서관 등 교육·복지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결국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세상의 어떤 장애물보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자승최강’을 강조합니다.

”

UDT 시절의 교훈과 목숨을 지켜준 방패, 장비의 가치

경남 고성 출신인 엄홍길 대장은 어린 시절 의정부 원도봉산 인근으로 이사하며 산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해군 UDT 출신임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1981년 해병이 아닌 해군 수병으로 입대한 그는 함정 근무 중 특수부대인 UDT에 지원해 수료했다. 산뿐 아니라 바다마저 거침없이 누볐던 셈이다.
“젊은 시절 넘치는 혈기로 물과도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타던 경비정에 화재가 나 폐선되면서 대기 발령 상태가 됐죠. 나태해지는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어 UDT 특수전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했습니다. 주변에선 편한 길을 두고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말렸지만요. 진해 훈련 당시 퇴교를 생각할 만큼 힘들었지만, 바다에서도 ‘자만은 금물’이라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8,000m 고봉을 도전할 때마다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 됐습니다.”
수많은 극한 상황을 견뎌낸 그는 산악 장비 기술고문 및 대한산악연맹 자문위원 등을 거쳤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안보 위협을 막아내는 방패를 만든다면, 엄홍길 대장에겐 등반 장비가 목숨을 지켜주는 방패였다. 목숨을 함께한 장비를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한껏 빛났다.
“등반에는 정말 많은 장비가 필요합니다. 로프(자일), 안전벨트, 카라비너, 하켄, 피켈부터 다운재킷, 이중화, 아이젠, 설맹 방지용 보호안경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두 생명과 직결되죠. 장비를 믿지 못하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없고,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면 동상에 걸립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 ‘자승최강’과 평정심

장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대한민국을 지키는 기술을 고안하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역할 역시 등반대의 곁을 지키는 ‘셰르파’와 같다고 그는 말한다. 철저한 대비, 고된 훈련, 강인한 정신력만이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그의 철학은 국방과학연구소 소원의 노고와도 궤를 같이한다.
“국방력이 튼튼해야 국가와 국민이 존재합니다. 최근 세계 곳곳의 분쟁 상황을 보면 힘이 없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명확히 보입니다. 현대전은 정보전과 전자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어 기술력이 곧 국방력입니다. 최전선에는 군인이 서 있지만, 그 용기의 원동력은 국방 기술과 장비입니다. 소원분들이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이는 그의 좌우명인 ‘자승최강(自勝最强·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하다)’과도 통한다. 22년에 걸친 16좌 도전 과정에서 그는 10명의 동료를 잃었고, 훗날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꾸리기도 했다. “산을 오를 때 가장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위험과 변수를 알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지죠. 결국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세상의 어떤 장애물보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자승최강’을 강조합니다.” 스스로를 이겨낸 후에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한다. 욕심을 내는 순간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고 위험에 처한다. 그가 항상 ‘평정심’을 강조하는 이유다.
“슬럼프에 빠지거나 팀을 이끌 때 과거의 고통과 성장 과정을 돌아봅니다. 리더가 판단을 머뭇거리면 대원 전체가 동요합니다. 솔선수범하는 희생정신, 강인한 체력, 빠른 대처가 모두 필요합니다. 삶의 산을 넘고 계신 분들도 ‘잘될 것이다’라는 신념과 자신감을 갖고 전력투구하시길 바랍니다.”

Profile.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양어대학 중국어학 학사와 동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석사를 받았다. 대한민국 해군 UDT 28기 병장으로 전역했으며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위원장, 경상남도 고성군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체육훈장 청룡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산악대상,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