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2000년대:
결실을 거두다, 미래로 나아가다
글. 편집실 일러스트. 챗GPT, shutterstock, 나무위키
글. 편집실 일러스트. 챗GPT, shutterstock, 나무위키
K-2 흑표, 천마, 해성, 신궁, 홍상어 등 26개 무기체계가 결실을 거두며 육해공을 아우른 2000년대 확장기를 살펴봅니다. 바다와 통신망이 승부처였던 시대,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낡은 수첩을 건넵니다.
도면도 없이 40일 만에 병기를 복제해 낸 ‘번개사업’의 긴박한 순간부터 한국군 독자 정찰위성 ‘425위성’을 탄생시키기까지, 지난 56년의 눈물겨운 사투를 소설로 만납니다. 국방과학연구소 56주년 연재소설 ‘숫자 너머의 이야기’는 시대를 빠르게 읽어내는 눈으로 누구보다 앞서 자주국방의 길을 개척해 온 선구자들의 숭고한 여정을 기록합니다. 과거의 유산으로 미래의 평화를 일구는 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상 위 달력이 또 한 장 넘어간다. 2006년 9월, 이 자리에 앉은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됐다. 걸어온 세월이 새삼스럽다. 민준은 정년이 코앞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이 연구소는 유난히 바빴다. 지상에서는 K-2 흑표 전차와 차기 보병전투장갑차가 형체를 갖췄고, 천마와 해성, 신궁이 잇달아 실전 배치를 앞뒀다. 바다에서는 청상어에 이어 홍상어가 시험대에 올랐고, 새로 진수한 대형 수송함의 전투체계도 손봐야 했다. 하늘에는 정찰용 무인항공기가 떴고, 항만마다 감시체계가 깔렸다. 한 해에 완성되는 무기체계가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었다. 메일함을 열려던 민준의 손이 잠시 멈춘다. 1999년 겨울,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됐던 밤. 거여동 연구동 준공식을 앞둔 순간, 그에게 메일 두 통이 도착했다. 하나는 정식 사업 착수를 앞두고 타당성을 검토하던 대잠 유도무기의 첫 시제 시험 결과였다. 발사된 유도탄이 수중에서 신호를 놓치고 그대로 가라앉았다는 내용이 화면 가득 담담한 문장으로 떠 있었다. 몇 달을 쏟아부은 첫 시제품이 바다 밑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한 통은 무기도, 시험 데이터도 아니었다. 우주와 사이버 공간의 좌표만 적힌 암호 문건. 당장 처리할 일이 급해 열어보지 못한 채 메일함 구석에 넣어두고 잊고 지냈지만, 가끔 떠오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열어봐야 할 문서라는 예감.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얼굴을 비친 건 박수찬 책임연구원이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실장님, 상부에서 벌써 연락이 왔습니다. 몇 년 개발한 무기가 부실 판정을 받았다고, 설계부터 다시 검토하라는 압박이 거셉니다.”
민준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찬, 이런 일 처음 겪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가 만드는 건 단순한 부품이 아니야.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다.”
민준이 금고에서 낡은 서류철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놓는다. 수십 년 전 동맹국에 보냈던 사거리 제한 서약서였다.
“이게 현무의 발목을 오랫동안 잡아온 물건이지.” 민준이 씁쓸하게 웃는다. “그 제한이 아예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 있었다. 바다. 그리고 그 아래. 전파도 마찬가지야. 천마도, 신궁도, 해성도 저마다 다른 싸움을 했지만 결국 이 시대 우리 세대의 진짜 승부처는 아무도 선을 그어두지 않은 곳, 어뢰와 통신, 이 두 가지였다.”
민준이 라이트박스에 필름을 건다. 인양한 유실탄 동체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발사, 공중 분리, 낙하산 전개까지는 완벽했다.”
필름의 한 부분을 민준이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문제는 여기, 바다를 너무 얕봤어. 입수할 때 받는 충격이 배선 제어부에 보이지 않는 실금을 냈어. 그 틈으로 물이 스며든 거야. 청상어 탄두를 담은 이 유도탄이, 모터가 돌기도 전에 신호끼리 간섭이 일어나서 그대로 가라앉았지.”
수찬이 마른침을 삼킨다.
“이름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도 않았는데 벌써 홍역을 치르는군.” 민준이 필름에서 눈을 떼며 씁쓸하게 말한다. “단순한 설계 착오가 아니야. 바다가 우리에게 한 번 더 배우고 오라며 낸 숙제라고 생각해라. 완충 알고리즘을 다시 짜고, 배선부를 보강해야 해. 이건 자네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민준이 수찬을 중앙 통제실로 데려간다. 대형 스크린 위로 함정과 잠수함, 해안 기지를 잇는 선들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무기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민준이 스크린을 가리킨다. “아무리 좋은 어뢰라도 표적 위치를 실시간으로 받지 못하면 눈먼 창이나 다름없어. 우리가 완충부를 붙잡고 있는 동안, 저쪽 연구동은 전술정보통신체계, C4I 탐색개발 팀이 밤을 새우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저게 완성되면 함정이 잡은 잠수함 위치를 몇 초 안에 초계기와 구축함에 동시에 제공할 수 있게 될 거야.”
민준의 눈빛이 잠깐 먼 곳을 향한다.
“핵심 규격 하나를 얻으려고 연구진이 어떻게 했는지 아나. 감시가 삼엄한 나라까지 들어가서는 밤마다 기술진을 붙잡고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와 그 자리에서 밤새 기억을 복원했다. 첩보전이나 다름없었지. 왜 그렇게까지 했겠나. 아무리 좋은 무기를 만들어도 통신이 끊기는 순간 고철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말을 멈춘 민준의 시선이 잠시 스크린 한구석에 머문다.
민준은 서랍 깊은 곳에서 수첩 한 권을 꺼낸다. 겉장이 다 해져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다. 그가 표지를 넘기자 첫 장이 나온다. 삼십 년도 더 된 잉크로, 여전히 또렷하게 적혀 있는 글씨. 380g, 사과형.
“이게 뭔지 아나.” 민준이 종이를 손끝으로 쓸며 말한다. “1971년, 우리 몸에 맞는 수류탄 하나 만들겠다고 한강 백사장에서 하루 종일 자갈을 던지던 시절 기록이다. 단 5g 오차 하나 잡겠다고 그 난리를 쳤지.”
그가 페이지를 천천히 넘긴다. 백곰 미사일의 추진제 배합비, 현무의 사거리 계산식, 이 낡은 종이 위에 삼십 년 넘는 세월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리고 맨 뒤, 가장 최근 필체로 적힌 어뢰 입수 충격 수식.
“이거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야.” 민준이 말을 잇는다. “K-2, 신형 장갑차, 대형 수송함 전투체계, 무인항공기, 항만감시체계까지, 지금 이 연구소에서 동시에 굴러가고 있는 사업만 스무 가지가 훌쩍 넘는데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어. 그런데도 결국 여기까지 온 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민준이 수첩을 수찬의 손에 쥐여 준다.
“380g도 처음엔 그냥 숫자일 뿐이었지. 그런데 그게 체계가 됐고, 그 체계가 지금 이 연구소를 지탱하고 있어. 이 어뢰가 끝나고 나면, 뒤이어 나올 함대함 유도탄과 대잠체계도 같은 통신망 위에서 움직이게 될 거다. 기록은 체계가 되고, 체계는 나라를 지킨다···.”
연구소 창밖이 붉게 물들어간다. 민준은 오래 써온 제도기와 낡은 공학 서적들을 상자에 담는다. 은퇴를 앞둔 사람치고는 담담한 손길이다.
상자를 들고 문을 나서던 민준이 걸음을 멈춘다. 뭔가 두고 왔다는 게 떠오른 탓이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모니터를 켠다. 1999년, 아리송한 좌표만 적힌 그날의 그 메일.
조심스레 클릭한 메일 본문엔 군 통신위성, 아나시스 사업의 초안이 들어 있다. 그 아래로 손 글씨를 스캔한 메모 한 장이 붙어 있다. “위성은 시작일 뿐 그다음엔 이 신호를 지킬 방법이 필요하다.”
민준은 ‘전달하기’ 버튼을 눌러 수찬의 메일 주소를 적어넣고, 몇 줄의 글을 본문에 써 내려간다.
“앞부분은 우리가 채웠어. 미래를 수호할 뒷부분은… 이제 너희 몫이다.”
민준이 상자를 들고 문을 나선다. 복도 불빛이 그의 등 뒤로 길게 늘어진다. 아래층 수찬의 책상 위엔 아직 그 낡은 수첩이 놓여 있다. 수찬은 조용히 수첩을 들춘다. 오류투성이였던 회로 필름 옆으로, 그가 새로 그리기 시작한 완충 알고리즘 회로도가 펼쳐진다. 어느새 수첩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비어 있는 페이지를 펼친 그의 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또박또박 글씨를 눌러 쓴다.
“궤도, 그리고 신호.”
빛바랜 수첩에 새로운 수식이 적히기 시작한다.
<무내미> 11+12월호에서 다음 내용이 이어집니다.
2000년대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적 확장
※
감시정찰분야 전방관측적외선장비: 1990년대까지 해외에 의존하던 적외선 센서 기술은 2000년대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첨단 표적탐지 및 추적 센서 개발로 이어지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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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정찰분야 전방관측적외선장비: 1990년대까지 해외에 의존하던 적외선 센서 기술은 2000년대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첨단 표적탐지 및 추적 센서 개발로 이어지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국방과학, 시대와 무기를 잇다
국방과학의 역사를 따라 알맞은 연대와 시기, 대표 무기체계를 짝지어 연결해 보세요!
바르게 조합된 선을 따라 상단의 글자들을 모으면
국방과학연구소를 대표하는 4글자 키워드 3개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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