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목장에서 엮은
초록빛 추억
구평모 소원 가족
글. 강진우 작가 사진. 박기현 작가
글. 강진우 작가 사진. 박기현 작가
풀잎의 푸르름이 절정에 다다른 7월 말, 구평모 소원 가족이 충남 예산의 한 체험형 목장을 찾았다. 더운 날씨에도 “오히려 관광객이 없어서 좋다”라며 활짝 웃은 네 식구는 한여름의 초원을 마음껏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초록빛 추억을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녹음, 선선한 산바람. 목장 나들이를 나서기에 더없이 훌륭한 날이었지만 제법 따가운 한여름 햇빛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구평모 소원 가족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활기찼다. “우리 가족에게 나들이는 생활이에요. 주말과 휴일에는 웬만하면 바깥으로 나오죠. 덥든 춥든 사계절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열심히 뛰노는 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구평모 소원이 말하자, 아내 정혜훈 씨와 첫째 도현이, 둘째 도하가 당연하다는 듯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보다 더 훌륭한 나들이 마음가짐이 또 있을까.
목장 초입의 카페에서 선크림을 꼼꼼하게 바른 네 식구가 손을 맞잡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입구를 통과했다. TV에서나 봤던 얼룩 무늬 젖소가 ‘음머’ 힘찬 울음소리로 일행을 반겼다. 구평모 소원 부부가 젖소의 덩치가 생각보다 크다고 감탄하는 사이, 도현이와 도하가 “젖소다!” 외치며 우리 쪽으로 달려 나갔다. 구평모 소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장 아이들 뒤를 따르자, 혜훈 씨가 세 남자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동물을 정말 좋아해요. 경기도에 살았을 때는 동물원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거의 매주 오갔을 정도죠. 다른 존재를 아끼고 예뻐할 줄 아는 아이들이라서 더 사랑스럽답니다.(웃음)”
아이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젖소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사이, 목장 관리인이 한 젖소를 이끌고 이들에게 다가섰다. 소의 선한 눈망울과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마주치자, 젖소는 기분 좋다는 듯 입으로 ‘푸르르’ 소리를 냈고 두 아이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젖소가 젖 짜기 체험을 위해 잠시 준비에 들어간 사이 아이들에게 어떤 동물이 좋냐고 묻자 도현이는 호랑이를, 도하는 토끼를 선택했다. 구평모 소원이 두 아이 손에 각각 들린 호랑이 인형과 토끼 인형을 가리키며 늘 가지고 다니는 ‘애착인형’이라고 귀띔했다. 그때 도현이와 도하에게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젖소가 제일 좋아요!” 일행 모두가 함박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던 사랑스러운 답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소젖을 직접 짜본 일반인이 몇이나 될까.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소의 큰 덩치에 멈칫거리기 십상이지만, 구평모 소원 가족은 그 어려운 일을 활짝 웃으며 해냈다. 목장 관리인이 능숙한 동작으로 시범을 보이며 이렇게 짠 소젖을 모으면 우리가 마시는 우유가 된다고 설명하자, 용기 있게 손을 뻗어 직접 젖을 짜본 도현이와 도하가 소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젖소야, 우리한테 우유를 줘서 고마워!” 구평모 소원 부부의 얼굴에 목장에 데려오길 잘했다는 의미가 담긴 미소가 그려졌다.
네 식구는 송아지에게 우유를 주는 체험과 염소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에도 적극 나섰다. 우유와 건초를 아주 잘 받아먹는 송아지와 염소를 행복한 표정으로 지켜본 도현이와 도하가 먹이를 더 주고 싶다며 빈 우유통과 바구니를 내밀자, 두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든 목장 관리인이 기꺼이 두세 번씩 빈자리를 채워줬다.
덕분에 아이들과 동물들의 훈훈한 교감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었다. 먹이 주기 체험이 끝날 무렵 어디선가 ‘부르릉’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 목장의 상징과도 같은 트랙터 기차가 여행객들에게 보내는 출발 신호였다. 부리나케 달려간 가족이 목 좋은 자리에 앉자, 트랙터가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코앞으로 지나가는 나무들의 초록빛 잎사귀, 곳곳에서 등장하는 타조, 말, 염소, 황소 등의 갖가지 동물들, 머릿결을 기분 좋게 스치는 바람이 네 식구의 행복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목장의 너른 숲과 초원을 더욱 생생하게 즐기기 위해 기착지에서 하차한 구평모 소원 가족은 황소 모양의 미끄럼틀, 낙타 모양의 그네를 타며 숲속 놀이터를 마음껏 즐겼다. 아이들이 가져온 버블건을 작동시키자 수많은 비눗방울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숲속 놀이터에서 한참을 논 가족이 뒤이어 목장 산책에 나섰다. 쨍쨍한 햇빛을 우거진 나무가 가려주니 피서지가 따로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하얀색 상의에 남색 하의로 옷을 맞춰 입은 네 식구는 곳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멈춰 서는 곳이 곧 사진 스팟일 정도로 멋진 풍경이 연이어 펼쳐졌다.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나무 그늘 길을 만끽하던 구평모 소원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리 알아본 장소가 있나 싶어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두 사람이 연애 시절 이곳에 한 번 와봤다는 것이다.
“벌써 10년쯤 지난 것 같은데 데이트 장소를 찾다가 여기에 왔었어요. 목장 곳곳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고, 자녀를 데려온 부부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도 결혼 해서 아이를 낳으면 다 함께 이곳에 오자’라고 다짐했는데요. 10년 전의 약속대로 두 아들과 함께 이곳에 오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이번 기회에 연애 시절 함께 사진을 찍었던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고 있었어요.”
네 식구는 ‘10년 전의 연인’이 안내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그때 그 장소를 발견했다. 부부가 숲속에 자리한 노란 문을 가리키며 추억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때와 똑같네!” 장소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사이 두 사람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 직후 두 아들을 연이어 가졌고, 그 아이들이 어느새 6살과 4살로 자라났으며, 이제는 둘을 넘어 누가 봐도 행복 넘치는 네 식구를 이뤘다. “얘들아, 저기 가서 사진 찍자.” 엄마 아빠의 말에 쪼르르 달려가 먼저 자리를 잡은 도현이와 도하. 아이들의 양옆에 구평모 소원 부부가 섰고, 지난 10년의 변화를 오롯이 담은 사진 한 컷이 카메라에 담겼다. “아이들이 있어 지금의 행복도 있는것이겠죠?” 구평모 소원 부부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도현이와 도하가 씨익 웃으며 각각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았다. “이제 우리 저기로 가 봐요!” 부부가 기꺼이 아이들을 따라나섰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