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서 전쟁까지:
위기를 읽는 과학자의 시선
서울대 환경대학원 우정헌 교수
글. 편집실 사진. 박기현 작가
글. 편집실 사진. 박기현 작가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일 이어지는 기록적인 폭염만 보더라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이제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생명과 건강, 식량과 경제는 물론 국가의 안보와 무기의 안정적 운용까지 기후 변화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후 위기를 겪는 지구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책적 해법을 제시해 온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우정헌 교수를 만났다.
우정헌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기후-대기 통합평가모형을 개발‧연구하며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대한민국의 학자다.
지구의 병세가 깊다. 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비는 이전 시대의 예측을 넘겨 퍼붓는다. 온대기후였던 곳은 아열대를 넘어 열대로 바뀌려 하고, 푸른 초원은 갈라진 흙바닥을 드러낸다. 형형색색 신비로웠던 산호는 말라붙은 뼈처럼 여위고, 금빛 비단 같은 피부의 마지막 코스타리카 두꺼비는 망가진 고향 앞에서 숨을 거뒀다. 앓고 있는 지구의 이마를 짚고 병환을 치유할 약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지구의 의사’라고 불리는 환경공학자들이다. 이들은 대기와 기후를 구성하는 코드를 해석하고 복잡하게 얽힌 지구 시스템에 맞는 처방을 내리며 인류가 따라갈 가장 안전한 미래의 지도를 그린다. 환경과학자들 중에서도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분야에서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정책과 사회를 개선하는 연구에 매진하며 놀라운 성과를 보여온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과의 우정헌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래를 보려 한다는 건 미래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여러 변수를 산정한 뒤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지구가 되고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거죠.”
기후변화를 줄이는 노력은 크게 감축, 예측, 적응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 감축에서는 말 그대로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거나 흡수량을 늘리는 방법을 찾는다. 예측 단계에서는 지구의 향후 기후가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며 마지막 적응 단계에서는 변화된 기후에 생명체들이 어떻게 적응하게 되는지를 예상한다. 우정헌 교수는 감축 분야를 연구하던 중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에너지와 자원, 환경오염, 인체 피해 등에 미치는 영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기오염은 기후변화와 연관이 깊습니다. 자동차나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면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이 동시에 배출됩니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는 배출을 줄인 결과가 수십 년 혹은 백 년 단위로 반영되고 대기오염 물질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만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를 따로가 아닌, 통합적으로 평가하고 연구하도록 방향을 제시한 것이죠.”
대기오염 및 기후변화는 국가 안보와도 연관이 깊다. 우선 국민의 건강권 및 생명보호와 직결된다. 중국에서 일부러 오염 물질을 배출한 것은 아니지만, 편서풍으로 인해 중국의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이 대규모로 넘어오면 결과적으로 한국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심각한 안보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대기오염은 10년~20년의 수명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상 타국에서 넘어오는 오염 물질에 의한 피해가 큽니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도 주시해야 하죠.”
또한 날씨는 첨단 무기의 운용과 관련이 깊다. 기후가 지금처럼 급속도로 악화하면, 제조 당시보다 더 극한의 환경에서 작동해야 하니 장비의 오작동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 우정헌 교수는 다행히 한국의 경우 혹한, 폭우, 고온 다습, 태풍 등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무기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편이지만 이 역시 기후변화가 더 극심해지면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이차적인 안보 위험이다. “기후라는 지구의 시스템이 변화해 어떤 나라의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었는데 여유자금조차 없어서 타국에서 식량을 사 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유럽과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 혹은 제3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식량을 중심으로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죠.”
기후변화 피해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이 줄면 한국처럼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에서는 당장 식량 안보를 위협받는다. 이는 경제 안보, 에너지 안보까지 흔들 수 있다.
식량부족으로 인한 정치 불안정은 자국뿐 아니라 타국의 전쟁 위협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는 이처럼 기후변화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정치와도 밀접한 문제인 만큼 향후에는 ‘기후-환경-국가 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환경 연구가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정헌 교수가 처음 대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중학교 시절 방문한 플라네타륨이었다. 망원경으로 달·목성·토성을 관찰한 소년은 행성과 우주, 특히 광대한 우주에 유일하게 생명체를 품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 깊은 고마움을 품게 됐고, 이는 지구라는 유기적 시스템의 병세를 진단하는 환경공학으로 진로를 정하는 동기가 됐다. 평소 무기에 관심이 많아 전쟁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관련 책을 탐독한다는 그는, 기후변화로 위기를 겪는 현재가 과거 역사 속 전쟁 상황과 닮아있다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정책의 추진 등을 통해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앞바다에 일본 배가 무수히 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의 절망감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그렇게 될 거라는걸, 전쟁이 터질 거라는 걸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이 생각을 못 했을까요? 예측은 다 했죠. 하지만 전쟁을 막을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발생한 겁니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역사적 사실이 그렇듯 기후변화는 ‘일어난’ 게 아니라 ‘일으킨’ 것입니다.”
연구를 하며 어떻게 하면 안전과 국방에 도움이 될지 자주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싶을 때 연구를 하는 보람이 커지더군요. 기후와 대기오염, 국방은 서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국방 분야에 계신 모든 분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저 또한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프로젝트는 다르지만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rofile.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과 우정헌 교수 우정헌 교수는 기후변화와 대기환경을 평가 및 관리하기 위해, 에너지-자원, 배출 인벤토리, 오염농도, 건강 피해, 비용-편익 등을 통합 분석하는 ‘기후-대기 통합평가 모형(Integrated Assessment Model:IAM)’을 개발·연구하고 있다.